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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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제철꾸러미/2006년~2010년

친환경 농산물, 시장에 맡기면 반(反)환경이 된다 (2007.07.12)

백화골 2009. 3. 4. 11:18

진입 장벽 높은 친환경 농산물 시장  

작년 일이다. 장인 장모님이 강원도 횡성으로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귀농하셔서 콩과 고추 농사를 짓고 계신다. 환경의식이 있으신 분들이라 친환경으로 농사를 지으셨고 무농약 인증을 받으셨다. 그래서 작년 가을 고춧가루를 좀 팔려고 모 생협 원주 지점쯤 되는 곳에 장모님이 전화를 하셨단다.  

그랬더니 이러저러한 이야기는 안 들어본 채 “저희는 아무 물건이나 받지 않습니다. 무농약 고춧가루는 여기도 넘쳐납니다”하고 쌀쌀맞게 전화를 끊더란다. 이 생협은 소비자들한테도 “저희는 아무한테나 물건 안 팝니다”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장모님이 하신 이야기는 “무농약 인증 받은 고춧가루가 있는데 팔 수 있을까요”가 전부였단다.  어디에서 어떻게 농사짓는지 한번 와보지도 않고 전화통화만으로 어떻게 힘들게 친환경으로 농사지은 농산물에 대해 ‘아무 물건’이라는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안정적인 생협 납품도 운이 좋거나 좋은 인연줄이 있어야 하는 법. 이런 저런 모임에도 얼굴을 비쳐야 하고…

산골에 박혀 죽어라 농약 안 치며 농사짓는 사람들이 괜찮은 판매처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게다. 그 일 뒤로 장인 장모님은 ‘인증 같은 거 받으면 뭐하냐’며 친환경 인증과 유통에 대해 회의적으로 바뀌셨다.  

사실 우리도 유기인증까지 받았지만 딱 맞는 유통처를 찾기 힘들다. 유통업체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농산물을 키우는 일도 어려운 일이지만, 무엇보다 납품을 하려면 전주나 금산, 광주까지 일주일에 몇 번씩 직접 배달을 나가야 하므로 시간이나 교통비를 따져볼 때 엄두가 나지 않는다. 

농사 규모를 크게 키워야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소규모로 농사지으면서 소박하게 살려고 귀농한 게 아닌가? 건강한 소규모 직거래가 농촌과 도시민 모두에게 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올해는 토마토만 직거래로 판매하고 가족회원제에 전념하기로 했다.  


친환경 농업은 규모를 줄이는 게 대안이다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FTA 파고 넘는 친환경 농사 경쟁력 있다’ 따위의 기사들을 보면 한심하다. 기자들이 도대체 시골 와서 한번이라도 상황 파악을 하고 쓰는 글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로 든 농민들 보면 엄청 큰 하우스나 시설에서 폼나게 친환경으로 농사지어 잘 산다고 한다. 매출이 얼마라는 둥 어디에 안정적으로 납품을 해서 돈 잘 법니다,

FTA 이길 수 있습니다, 하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이런 걸 물어보는 기자는 없다. “근데 빚은 얼마세요?” 아마 엄청날 게다.  대부분 빚 좋은 개살구고 빚더미 농민들이다. 요즘엔 FTA가 체결된 후 쏟아질 지원금을 노리고 보조금 받아서 축사를 대형으로 짓거나 시설을 대규모로 만드는 농민들이 늘어난다.

거의 도박, 투기 수준이다. 요즘 같은 때에 왜 이렇게 축사를 대형으로 짓냐고 물으면 망하면 다 보조해줄 거란다. 어차피 망할 거 대규모로 망해야 보상금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겠냐고 한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며칠 전에 우연히 <녹색평론> 2006년 11-12월호 ‘아름다운 노·농연대-자급·자치의 관점으로(천규석)’란 글에서 다음 글귀를 읽게 되었다. “친환경 농산물도 시장에 맡기면 결국 반(反)환경 농산물이 되고, 관행 농산물도 직거래로 하면 인간의 공동체적 관계 때문에 결국은 친환경으로 돌아간다”

작년부터 우리가 가장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내용과 일치하는 글이었다.  특히 친환경 농사는 절대 대규모로 할 수 없다. 화학비료 대신 퇴비를, 농약 대신 천적이나 미생물 기피제로 벌레를 잡고, 제초제 대신 풀을 뽑거나 부직포를 대는 친환경 농사는 관행농에 비해 몇 배 힘과 비용이 들어간다. 불가능하다.

대기업에서 나서서 대규모로 친환경 농사를 지어 ‘친환경 농산물’을 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다들 그냥 픽 웃는다. 규모가 커질수록 반환경적으로 농사지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미 FTA가 국회비준을 거쳐 시행되면 한국이 미국 자본에 종속되어 서민 경제도 어려워지겠지만 농촌은 말 그대로 끝이다.

토마토만 해도 5년 동안 관세가 조금씩 줄어들다가 완전 개방된다. 여기서 한술 더 떠 유럽과도 FTA를 추진한다고 한다. 친환경 농산물 선진국인 유럽은 엄격한 국제 기준에 따라 재배한 수준 높은 친환경 농산물 시장이 이미 형성되어 있다. 개방되면 한국은 일반 관행농 뿐 아니라 친환경 농업도 망할 수밖에 없다.

규모가 클수록 피해가 커지는 건 자명한 일이다.  친환경 농사로 살아남으려면 규모를 줄이고 소비자와 인간적인 소통이 가능한 소규모 직거래에  주목해야 한다는 게 우리 생각이다. 적은 땅을 효율적으로 농사짓는 것이 대안이다. 부족한 게 많지만 우리가 시행 하고 있는 ‘가족회원제’도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가족처럼, 인간적인 작은 직거래로 친환경 대안 만들기  

제철 농산물 가족회원제는 시장 출하 대신 우리가 선택한 작은 직거래 방식이다. 생협이나 공판장에 농산물을 납품해 보았더니 쉽지 않았다. 1박스 3만원 하던 상추가 하루사이에 3천원으로 떨어지는 공판장 시스템에 기대서는 안정적으로 농사지을 수 없었다.

진입 장벽이 높은데다 점점 더 ‘친환경’보다는 ‘상품성’을 우선시하는 친환경 농산물 유통업체에 납품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작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가족회원제는 6개월간 회원 가정에 매주 모둠 농산물을 보내는 방식이다. 가장 큰 특징은 유기농으로 재배한 제철 농산물을 보낸다는 점이다.

회원이 농산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때 그 때 밭에서 나오는 농산물을 발송한다. 제철 농산물에 맞춰 푸른 밥상을 꾸리는 것이 가장 건강에 좋다는 취지, 가족에게 농산물을 챙겨 보낸다는 마음으로 회원제를 운영하고 있다. 쇼핑몰 식 주문에 익숙한 사람들이 처음에는 농산물을 직접 선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평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회원은 우리의 취지에 공감하고 맛나게 농산물을 받아준다.

봄에 회원이 모집되는 규모를 보고 씨앗을 넣고, 작은 땅에서 다품종 소량 재배로 나름대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다.  특히 첫물이나 끝물이라서 겉모양이 좀 번듯하지 못하거나 야채 속에 벌레가 함께 배달(?)되는 경우에도 회원들이 이해를 해주는 게 가장 좋다.

작년에 이어 올해로 두 해째 우리의 모둠농산물을 받고 있는 한 회원은 ‘작년만 해도 벌레 구멍이 송송 난 야채를 보면 좀 마음이 꺼려졌었는데, 올해는 오히려 먹음직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한다.  유기농 농사, 끊임없이 풀과 벌레들과 싸우는 게 힘들긴 하지만 작은 직거래로 많은 ‘가족’들이 생기니 보람도 커진다. 농사짓는 우리도, 회원들도 행복하고 건강한 밥상을 꾸릴 수 있다는 작은 소망으로 힘나게 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