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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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5년~2006년

가을의 한가운데서 오래된 부처를 만나다! (2006.09.15)

백화골 2009. 3. 4. 10:27

양상추, 쌈배추, 무, 알타리 무, 김장배추까지 심었으니 올해 가을 작물은 다 심었다. 밭에 들어갈 건 다 들여보내고 나니 마음까지 가뿐하다. 이제 서리 내리고 거두어들일 철이 되기 전까진 비교적 한가한 날의 연속이다. 하루종일 찌뿌둥하고 초겨울 같이 쌀쌀한 이상 저온 날씨가 일주일 이상 계속되더니 오늘은 오랜만에 볕이 쨍쨍한 전형적인 맑은 가을날이다. 좋은 날을 기념해 오후에 짧은 여행길에 나섰다.

목적지는 장수 군내에 있는 '원흥사'라는 작은 절. 이곳에 삼국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석불이 있다는 얘기를 예전에 들은 적이 있다. 한 번쯤 둘러보고 싶었다.

같은 군내라도 우리 집이 있는 계남면과 원흥사가 있는 산서면 사이엔 꽤 구불구불한 산고개길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차로 30분 남짓 걸렸다. 줄지어 활짝 핀 칸나가 반겨주는 원흥사 들어가는 예쁜 길.

논밭 사이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는 작은 절. 경내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건 절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와 호박고지. 스님들이 농사도 짓고 있는 걸까? 밭에 김이라도 매러 나가셨는지 인기척은 없고, 빨래건조대에서 고추와 함께 얌전히 마르고 있는 승복만 눈에 띈다.

석불을 찾아 한바퀴 돌아본다. 손바닥만큼 작은 절이라 한바퀴 돌아 금방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대웅전 뒷마당에서 흐드러지게 핀 꽃들만 만났을 뿐 오래된 석불은 눈에 띄지 않는다.

분명 절 한켠에 '원흥석불'에 대한 문화재 안내판은 서 있는데...

이건가? 보기 좋긴 하지만 현대적인 냄새가 물씬 나니 물론 아니겠지.

이것도 물론 아니겠고.

앙증맞고 귀여운 이 조각이 오래된 석불일 리도 없을 텐데...

주위에 물어볼 사람도 없고 하여 석불 찾기를 포기하고 그냥 나오려다가 그래도 절에 왔으면 대웅전 안은 보고 가야지 하는 생각에 대웅전 문을 여는 순간, 오래된 부처와 마주쳤다.

불교신자도 아니고, 불교미술에 대해 뭣 좀 아는 것도 아니니 사실 까막눈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까막눈의 눈으로 봐도 그다지 예술성 돋보이는 조각은 아닌 듯. 오래되어 풍화된 탓이겠지만 표정도 뚱하고 체형도 둔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 거대한 미륵불과 마주치는 순간 압도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삼국시대부터 무수한 인간사를 지켜봤을 부처의 얼굴.

절에 자주 가는 것이 아니니 다른 절도 이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석불 앞에 올려 바쳐진 과자묶음이 재미있다. 이 오래된 부처님도 과자는 좋아하시려나? 누굴까, 이 과자를 곱게 올려 바친 사람은?

절 입구에 세워져있는 '평화 염주탑'이다. 안내문에 따르면 이 절의 한 스님이 '인류 화합과 평화를 위한 기도 정진 중에' 현시 받은 모양대로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둥글둥글한 염주탑이 아름답다. 평화 염주탑의 뒷모습.

삼라만상 세상살이 오늘만큼만 평화롭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