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5월이 시작됐다. 농민으로 살게 된 후 가장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시기다. 이것저것 봄작물 관리해야 하고, 서리가 안 내리는 시기 이후에 심는 가지, 야콘, 고구마, 노지 고추 등을 심는 달이기도 하다. 날씨는 따뜻해서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날들이지만, 여기저기 밭에서 할 일이 산더미라 잠시도 쉬지 못한다. 그래도 농사짓는 사람이 느끼는 5월의 정취와 설레임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가치 있다.
5월 달력에 적혀 있는 노동절, 부처님 오신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 기념일이 많지만, 농민에게 5월은 하루하루가 소중한 농사 기념일이다. 5월1일은 옥수수, 수수 등을 심기 좋은 날이고, 각 지역별로 5월5일, 10일, 15일은 노지 고추를 심는 날이다. 또 5월에 비가 오는 날은 모든 농민들이 고구마를 심는다. 5월은 하루하루가 무척 바쁘면서도 1년 농사에 기념할만한 소중한 날들이다. 그래서 ‘각 기념일’이 되면 농민들은 마치 비밀 지령을 받은 조직원들처럼 밭에 나가 비슷한 일을 한다.
지난 주에 몇 차례 서리가 내렸다. 싹을 잘 틔어 자라던 노지 감자가 한방 먹었다. 서리에 잎이 얼어버려 시들어버렸다. 감자가 서리를 맞으면 죽는 것은 아니나 수확량이 떨어진다. 수확 날짜도 늦춰지고. 그래도 우리는 나은 편이다. 사과 농사 짓는 사람들은 4월 말에 갑자기 내리는 된서리 때문에 새벽 4시에 일어나 물을 주며 냉해 피해에 대비했다고 한다. 물을 주면 된서리가 내려도 냉해 피해가 줄어든다고 한다.
드디어 ‘고사리 끊기 행사’가 끝났다. 둘이서 여기저기 산을 누비며 고사리를 열심히 꺾었다. 몸 곳곳에 가시가 박히고 상처가 났지만 오랜만에 고된 산악 행군을 하며 몸을 풀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열심히 산에 올라 고사리 행군을 무사히 마쳤다.
봄꽃들이 한창이다.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살구나무 꽃 앞에서 그냥 멈춰섰다.
부처님 오신날, 차를 타고 지나다보니 절로 올라가는 길이 참 예쁘다. 우린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일 뿐인데도 공양하고 가라며 인심 좋게 웃는 할머니의 미소가 부처님 표정을 닮았다.
토마토와 참외를 심었다. 귀농 첫해부터 주작목으로 키웠던 토마토. 농사를 어떻게 짓는지를 알게 된 건 다 토마토 덕택이다. 참 힘들고 어려웠지만 맛 좋은 토마토 덕분에 행복했던 여름들. 올 여름도 우리와 우리 회원 가족들이 모두 행복해질 수 있도록 더 맛있고 건강한 토마토로 키워야지.
간간이 비가 내린다. 검은 먹구름이 몰려오면 예전엔 걱정부터 앞섰는데 요즘엔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기습 폭우 보다는 간간히 조금씩 오래 내리길 바란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오후 5시 해가 쨍쨍 떴는데 우박같은 비가 갑자기 30분 이상 쏟아졌다. 한여름도 아니고 5월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낙비가 쏟아지는 건 처음 본다. 역시 이상 기후 때문인가.
땔감용 참나무 토막에서 싹이 올라온다. 나무란, 자연이란 잘라도 죽지 않는 것인가 보다. 어떻게 몸이 다 잘려 있는데 싹이 올라오지.
이른 봄 지독한 가뭄으로 싹이 안 나와서 다시 씨 넣고 매일 조리개로 물을 주며 키운 소중한 완두콩. 이제 하나둘씩 싹을 틔우며 자라나고 있다. 완두콩이 잘 붙잡고 올라가라고 싸리나무 지주대를 해주었다.
5월은 각종 병충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온도가 더 오르기 전에 예방하고 잡지 못하면 한 해 농사가 더 힘들어진다. 첫 해, 둘째 해까지 진딧물이 오는 작물은 대부분 방제에 실패한 뼈아픈 경험이 있다. 셋째 해부터 천적과 각종 유기농 방제법 실험이 성공하여 진딧물 피해가 적었다. 올해는 계란 노른자와 식용유를 믹서로 섞어 뿌리는 난황유로 진딧물을 방제해보기로 했다. 난황유는 특히 호박, 오이, 참외 등에 오는 흰가루병 예방 및 치료에도 효과가 크다고 한다. 우리는 처음 시도해보는 것인데, 주변에서 친환경 농사짓는 이들이 확실한 효과를 봤다고 해서 오이와 애호박, 고추, 참외, 양배추, 브로콜리에 뿌려줬다. 아직 진딧물이 오기 전이라 방제 효과가 좋을 것 같다.
'농부의 하루 > 2009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고 긴 가뭄, 농산물 가족회원 발송 준비 (0) | 2009.05.10 |
---|---|
해질녘 물주기 (2) | 2009.05.05 |
툇마루 밑에 핀 하얀 민들레 (2) | 2009.05.05 |
우리 모두 기계 조심! (0) | 2009.05.04 |
머릿니 (3) | 2009.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