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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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9년

머릿니

백화골 2009. 4. 30. 08:54

일주일에 한 번씩 지역 방과후 공부방에 나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농번기 땐 일주일에 하루씩 시간 빼는 게 좀 어려울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 너무 이뻐서 이런 어려움은 충분히 상쇄가 되고도 남는답니다.

이곳에 10살 남짓 되는 아이 하나가 있는데, 어렸을 적부터 살뜰히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던 탓에 기초학력이 심하게 떨어지는 데다 옷매무새도 지저분하고 친구들과도 원만히 어울리지 못하는 일명 왕따입니다. 어렸을 적 ‘국민학교’ 다닐 때 반에 한두 명씩은 꼭 있던 아이, 지금도 가난한 동네에선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아이지요.

이 아이 이름을 오뚝이라고 합시다. 이 오뚝이에게 취미 한 가지가 있으니 다른 사람 머리 손질해주기입니다. 묶었다가 풀었다가, 땋아 내렸다가 올렸다가... 뭐든 싫증 잘 내는 오뚝이가 머리 장난만큼은 질리지도 않고 계속 합니다.

작년까지 머리가 길었던 저는 그야말로 오뚝이의 밥이었습니다. 저만 나타나면 하루종일 쫓아다니면서 갖은 요상한 헤어스타일을 다 연출해주곤 했지요. 이러는 와중에 머리칼을 한 줌씩 뽑아놓곤 했지만, 다른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아 저에게만 매달리는 오뚝이가 안쓰럽기도 하고, 뭐라도 한 가지 열중해서 하는 게 기특하기도 해서 가만 놓아두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뭐라고 놀리면 “얘들아, 오뚝이가 앞으로 커서 훌륭한 미용사가 되려나봐.” 하고 오히려 격려해주기도 하면서요.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작년 가을쯤 되었을 때입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머리가 가려워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심해져서 어쩔 땐 미칠 듯이 가려운 겁니다. 환절기라 건조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했습니다. 한 두 달이 지나자 남편도 머리가 가렵다고 불평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우연히 제 머릿속을 봐주던 언니가 기겁 하며 알려주기 전까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가려움의 정체가 머릿니였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뒤늦게야 생각이 나더군요. 오뚝이가 어느 날 지나가는 말로 “쌤도 이 샴푸 써본 적 있어요?”하고 물어봤던 일이 말이에요.  그 땐 속으로 '이 샴푸? 이 샴푸가 뭐지?' 하고 넘어가고 말았지요.

네, 저도 당장 약국으로 달려가 오뚝이가 말하던 그 이 샴푸를 사서 감았습니다. 쇠로 만든 참빗이 부록으로 딸려있더군요. 말이 샴푸지 두피와 눈이 따끔따끔한 것이 엄청나게 독한 화학약품이었습니다. 다행히 이 샴푸 한 번으로 머릿니가 떨어지긴 했지만 참 끔찍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이후 한동안은 조금만 머리가 가려워도 또 이가 생긴 건 아닌지 두려움에 떨어야 했고요.

올해도 오뚝이는 방과후 학교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올해는 제 머리 길이가 짧아졌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오뚝이는 여전히 제 머리를 향해 달려듭니다. 그러면 저는 ‘미용사가 되라’는 격려 대신 슬그머니 머리를 치우고 딴청을 부립니다. 아이가 안기거나 업히면 10cm 가량 슬쩍 머리를 뒤로 빼냅니다. 역시 아무나 마더 테레사가 되는 건 아닌가 봅니다.

어제는 오뚝이가 무릎에 와서 앉더니 “아빠가 비오는 날마다 머리에 이가 있나 없나 봐주는데 어제는 이가 있다고 이 샴푸로 감겨줬어요.” 하고 고백인지 실토인지 하더군요.

“엄청 따가웠지?”

“네.”

“따가운 거 참느라 고생했다. 장하다 우리 오뚝이.”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끼리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답니다.

뉴스를 보니 요즘 초등학교나 어린이집에서 머릿니가 심심찮게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머릿니를 죽이는 이 샴푸가 린덴이라는 강한 독성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어린아이들의 여린 두피에 흡수될 경우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하네요.

이 샴푸를 상습적으로 사용하는 오뚝이를 위해, 그리고 머릿니를 가진 적지 않은 수의 초등학생들을 위해 보다 안전한 이 제거제가 어서 빨리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단정해 보이는 머릿속에 사실은 머릿니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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