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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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3년~2016년

수렵 허가구역에 무방비로 노출된 농민들

백화골 2013. 3. 6. 21:50

낮에 마늘밭에서 싹 난 곳 비닐 찢어주는 일을 하고 있는데, “- -” 하고 요란한 총소리가 울렸습니다. ‘또 사냥꾼이 왔나보군. 저 총소리는 정말 아무리 들어도 기분 나쁘네...’ 하고 생각하고 계속 일을 하고 있는데, 조금 있다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우리 마늘밭 바로 건너편에 있는 사과밭에서 일하던 마을 사람이 총에 맞았다는 겁니다. 깜짝 놀라서 얼마나 다쳤는지 물어보니 다행히 총알이 팔에 맞았고, 마침 두꺼운 옷을 입고 있어서 큰 부상은 입지 않았지만, 마늘밭 쪽으로도 총알이 날아갈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궁금해 하다 나중에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사과밭에서 일하던 중 갑자기 날아온 총알에 팔을 맞은 뒤 사냥꾼에게 항의를 하니, 멀리서 날아온 총알이니 괜찮을 거라며 조금도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고 사과 한마디 없이 계속 사냥을 하려고 하더랍니다. 하도 기가 막혀서 일단 마늘밭에서 일하는 저에게 전화를 해 주의를 준 뒤 경찰에 신고했는데, 출동한 경찰은 그 몰지각한 사냥꾼에게 앞으로 장수군 쪽으로 오지 못하도록 주의만 준 뒤 그냥 보냈다고 하네요.

 

다행히 총알이 팔에 맞는 바람에 큰 부상은 피했지만, 몇 센티미터 차이로 목이나 얼굴에 맞았으면 어떡할 뻔 했는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또 사냥꾼이 총을 쏜 자리에서 방향만 바꿔 쏘았다면 그 총알은 제가 맞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사실 오늘의 사고는 예고되어 있던 일이었습니다. 사냥꾼들이 우리 마을에 들어와 총질을 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거든요.

 

 

작년 11월 무렵,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난데없는 총소리가 조용한 산골짝을 뒤흔들었습니다. 저희도 너무 깜짝 놀랐고, 오늘 총에 맞은 사과밭 하는 마을 이웃도 깜짝 놀라서 같이 총소리 난 곳을 살펴보니 사냥개 두어 마리와 함께 낯선 사람이 총을 들고 산자락을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지 뭡니까. 불법 수렵인 것 같아 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신고를 받고 바로 경찰차가 오긴 했는데, 경찰관의 설명은 대충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불법 수렵이 아니다. 11월부터 내년 3월까지 장수군 일원 전체에 수렵이 허용되었다. 규정상 민가에서 200미터 이내에서만 총을 쏘지 않으면 뭐라고 단속할 방법이 없다. 이런 전문 사냥꾼들은 사람들도 점잖고 안전교육도 철저히 받았기 때문에 절대 사람 있는 곳으로는 총 안 쏜다.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음부터는 사냥꾼과 주민 간에 대화로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해라...”

 

경찰차 사이렌 소리를 듣고 산을 내려온 사냥꾼도 그냥 자기한테 말을 하지 뭣 하러 경찰까지 불렀냐며, 자기는 전주 사는 사람인데 원래 사냥 가던 곳 주민들이 하도 인심이 팍팍해서 장수까지 오게 되었다고 자기를 소개하더군요.

 

이렇게 마을 가까운 곳에서 총질을 하는데도 불법이 아니고 단속할 방법이 없다는 말에 조금 어이가 없긴 했지만, 경찰관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가 잘 모르고 너무 과민반응 했나 싶은 생각도 들어 그냥 알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일하다 갑자기 탕탕 총소리가 들리거나 커다란 사냥개가 집 앞에 불쑥 나타나거나 해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습니다. 전문 사냥꾼들은 안전교육을 철저히 받기 때문에 절대 위험하지 않다는 경찰관의 말을 그냥 의심 없이 믿었습니다. 너무 순진했던 거지요.

 

등산이 취미인 사람이 있고, 낚시가 취미인 사람이 있는 것처럼, 사냥이 취미인 사람도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도시에 비해 적게 산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사람 사는 마을인데, 마을 주변에서 사냥하고 총 쏘는 것을 그냥 내버려둬야만 하는 걸까요. 이곳은 그 사람들이 취미로 즐기는 사냥터이기 이전에 우리와 우리 이웃들의 소중한 삶의 터전인 걸요.

 

민가에서 200m 이내에서만 총을 쏘지 않으면 된다는 것도 어이없는 발상입니다. 사냥꾼들이 사냥하러 올 정도로 날씨 좋은 날 어떤 농민이 자기 집에 가만히 틀어박혀 있나요. 집에서 멀리 떨어진 밭에서도 일하고, 산자락에 거의 붙어 있는 비탈밭에서도 일하고 그러지요.

 

총소리가 울릴 때마다 막연히 불안해했던 일이 현실로 벌어진 오늘. 이제부터 우리 마을도 사냥꾼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인심 팍팍한 동네가 될 겁니다. 경찰이 지켜주지 못한다면 마을 사람들 스스로라도 지켜야지요. 사람 사는 동네를 그저 좋은 사냥터로만 보는 사냥꾼들, 해마다 봄철이면 도시에서 고급 승용차를 끌고 와 농기계 들락거려야 하는 농로길에다 떡 하니 주차해놓고 산이며 길에다 온통 쓰레기 버리고 가는 나물꾼들... 시골 인심 달라졌다고 나무라기 이전에 왜 시골 인심이 달라졌을까 먼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