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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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3년~2016년

경축 경칩! 개구리 깨어나다

백화골 2013. 3. 4. 19:29

도시에서 살던 시절, 우리나라 24절기는 그냥 달력에 표시된 별 의미 없는 이름일 뿐이었습니다. 일기 예보나 텔레비전 영상 뉴스에서 얼핏 보고 넘어갈 뿐 아무런 감흥도 없었지요. 노는 날도 아니고, 실생활과 아무런 관련이 없게 느껴졌으니까요. 


농사짓고 나서부터야 24절기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를 절절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정말 유구한 전통을 가진 농경사회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3월 5일 경칩. 다들 아시다시피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날입니다. 겨우내 죽은 듯 움츠리고 있던 생명들이 소생하는 것을 기념하는 날이지요. 혹독한 겨울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만 가질 수 있는 기념일이자 알고 보면 굉장히 즐거운 축제의 날이랍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가질 법도 합니다. 천지만물 온갖 생명들 중 왜 하필이면 개구리가 이 기념일의 대표주자가 되었을까요? 정확한 유래 같은 건 잘 모르지만, 저는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만물이 소생하고 있음을 개구리만큼 확실하게 알려주는 이도 없으니까요.

 

저희가 사는 마을에선 사실 3월 5일이 아니라 2월 28일부터 개구리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인적 뜸한 산골 마을. 사람도 귀하지만 소리도 귀합니다. 집에 놀러온 손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아~ 여기는 정말 조용하구나!” 하는 감탄일 정도입니다. 특히 농번기가 시작되기 전인 겨울과 이른 봄까지는 적막하기까지 하지요. 그런데 이 적막한 세상이 어느 날 갑자기 소리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것도 바람에 떠는 나뭇가지 소리처럼 스산하고 나즈막한 소리가 아니라, 온세상이 자기들 것이라도 되는 양 목청껏 떠들어대는 저 소란스런 떼창이란!

 

제가 개구리 울기 시작한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것도, 일부러 기억하려 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갑작스런 소리의 변화가 너무나 인상적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기억하게 된 것이랍니다.

 


개구리를 깨울 만큼 포근하게 살랑거리던 날씨는 3월 1일부터 다시 기온이 떨어지면서 사라지긴 했지만, 깨어난 개구리는 다시 잠들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겨울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그렇게 줄기차게 울어댔던 목적을 이 개구리 한 쌍은 달성했습니다.

 


개구리처럼 요란스레 알리지 않을 뿐이지, 주변을 잘 살펴보면 이미 천지만물의 소생은 시작되고 있습니다. 노랗게 말라죽은 묵은 잎 사이로 뾰족뾰족 새 잎을 올리고 있는 발밑의 풀들, 겨울 동안 안 얼어 죽고 잘 버텨줄까 걱정했는데 이렇게 반갑게 이마를 올리고 있는 마늘밭의 새싹들, 조금씩 물이 오르기 시작한 나무의 겨울눈들... 때가 되었다고 이렇게 기지개 펴는 생명들이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스러울 따름입니다.

 


경칩이 되면 대동강 물도 풀리기 시작한다는데, 우리 밭 근처에 있는 저수지는 아직도 꽁꽁 얼어붙어 있네요. 햇볕이 들지 않는 음지라 아직 얼음이 풀리려면 멀었습니다. 이 저수지로 청둥오리처럼 보이는 철새들이 날아와 쉬는 것을 몇 번 본 적 있는데, 올해도 찾아와줄지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만약 스페인이나 브라질 같은 나라에 경칩 같은 기념일이 있다면 어떤 풍경이 벌어질까 상상해봅니다. 다들 개구리 가면을 쓰고 요란스럽게 거리 행진을 하고, 개구리 모양의 뭔가를 서로에게 던져가면서 왁자지껄하게 소란을 만들어내고... 뭐 이런 축제가 벌어지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역시! 근면성실 부지런히 일하는 농경사회지요. 백과사전을 보니 경칩에 하는 일은 ‘밭에 퇴비를 푼다’ 라네요. 하긴 지금이 딱 퇴비 풀 때이긴 합니다. 저희 역시 밭에 퇴비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바깥에선 냉이가 올라오지 않았지만, 하우스 안은 냉이 천지입니다. 오늘은 향긋한 냉이 된장국 예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