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박정선, 조계환/울주군 두서면 내와1길3/유기농인증번호 : 07100003/연락처 : 010-2336-0748

농부의 하루/2013년~2016년

꽃샘 눈발 쏟아져도 봄나물은 올라오고

백화골 2013. 4. 21. 22:15

 

드디어 산에 분홍색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진달래가 빠지면 한국의 봄이 아니지요. 앙상하던 낙엽송도 연둣빛으로 물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진달래꽃 화전은 마음속으로만 부쳐 먹고, 이 밭 저 밭 다니며 봄 농사일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며칠 동안 바람만 몹시 불고 봄비다운 비가 안 온 탓에 흙이 바싹 말랐습니다. 며칠 전 심은 어린 모종들이 목말라 하기에, 하루 날 잡아 관수시설 자재들과 소형 모터 등을 사다가 윗밭에 아예 스프링클러를 설치했습니다. 경사가 심한 밭 위로 한참 물을 끌어올려야 하는 거라 물이 제대로 돌아갈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스프링클러가 시원스런 물줄기를 뿜어내네요.

 

 

며칠 만에 일기예보에 비소식이 떴습니다. 오랜만의 단비 소식에 양배추, 배추, 브로콜리에 이어 양상추, 컬리플라워, 로메인 모종까지 다 내다 심고 촉촉한 봄비가 때맞춰 적셔주길 기다렸더니 이게 왠일이랍니까. 처음엔 분명 봄비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조금씩 진눈깨비로 바뀌더니 함박눈으로 바뀌어 한겨울처럼 펑펑 쏟아지네요.

 

도깨비 같은 4월 날씨에 한두 번 당한 게 아니건만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습니다. 당황해서 늘 우왕좌왕, 갈팡질팡. 전국에서 아마 꼴찌가 아닐까 싶을 만큼 요즘에야 슬슬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저 매화, 벚꽃처럼 느긋한 맘으로 장수의 봄을 따라갈 줄 알아야 하는데, 농부의 조급한 맘은 늘 조금씩 앞으로 기울어져 있나봅니다.

 

쌓였던 눈은 다행스럽게도 한나절이 지나자 모두 녹아내렸습니다.

 

 

봄을 알려주는 또 다른 산의 전령사, 고사리가 드디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날씨가 따뜻해서 눈이 아닌 비가 내렸다면 첫고사리가 제법 많이 올라왔을 텐데, 얼어붙을 듯 추운 날씨 때문인지 아직 몇 개 보이지 않네요. 아마 다음 주쯤 되면 고사리가 본격적으로 올라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사리는 꺾는 데 품이 워낙 많이 들어 발송 품목에서 뺄까 말까 고민하기도 했는데요, 작년 회원분들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반응이 굉장히 좋았던 터라 올해도 빼지 않고 가기로 결정했답니다. 회원분들 모두에게 조금씩이나마 산고사리를 보내드리기 위해 내일부터 2~3주 간 백화골은 특별 고사리 기간’(^^)에 들어갑니다. 매일 새벽마다 산행 훈련 하려구요.

 

 

지난 열흘 동안 백화골에는 귀한 손님이 머물다 갔습니다. 우프로 일하러 온 분인데, 처음 하는 농사일이라 많이 힘들었을 텐데도 자기 일처럼 열심히 일을 거들어주셔서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답니다. 특히 작은 새소리, 바람소리 하나에도 감동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축복 같은 자연 속에서 일하며 살고 있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직 밭에서 여러 채소들이 나오기 전이라, 요즘 백화골 밥상은 봄나물들이 책임지고 있습니다. 우퍼로 오신 분이 마침 고기나 인스턴트 음식을 안 좋아하는 분이어서, 밥상 메뉴가 거의 매일같이 이런 풀들이었답니다. 봄에 올라오는 연한 풀들은 거의 다 먹을 수 있는 나물이라고 보면 됩니다.

 

 

하우스 안 작물들은 벌써 이만큼 자랐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건 브로콜리 곁순이에요. 브로콜리를 재배할 때 원순 하나만 크게 키우기 위해서는 곁순을 일찌감치 다 쳐주어야 하거든요. 브로콜리 곁순을 따서 그냥 버리는 사람들도 많던데, 요즘처럼 밭에서 나오는 채소가 귀할 때 브로콜리 곁순은 더더욱 유용한 먹을거리가 된답니다. 양파 조금 썰어넣고 소금 살짝 뿌려서 기름에 볶아 놓으면 훌륭한 나물 반찬 완성~

 

 

내일 새벽 온도가 영하 3도까지 떨어진다는 일기 예보를 보고, 싹 걷어서 창고에 넣어두었던 이중터널 자재들을 다시 꺼내 설치하고 있는 중입니다. 영하 3도 정도면 이중터널을 안 해도 괜찮을 듯 싶긴 하지만, 4월 초 잠깐 방심했다가 하룻밤 만에 처참하게 감자에 냉해를 입힌 경험이 있는지라 번거롭긴 해도 안전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4월도 일주일 여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번이 마지막 꽃샘 추위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