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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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3년~2016년

봄바람, 꽃샘추위, 봄나물 5일장

백화골 2013. 3. 25. 08:29

날씨가 조금 따뜻해졌나 싶으면 또 꽃샘추위가 찾아오고, 춥다 싶으면 다시 따뜻해집니다. 변덕스런 3월 날씨 때문에 가장 귀찮은 것은 하우스 스프링클러 관수 시설입니다. 낮엔 온도가 상당히 올라가기 때문에 2~3일에 한 번씩은 심어놓은 작물들에게 물을 줘야 합니다. 밤에는 거의 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지기 때문에 모터가 얼어 터질 염려가 있어 연결해 놓았던 관수시설을 다 다시 해체해 놓아야 하지요. 귀찮긴 하지만 뭐, 3월이란 원래 그런 계절인 걸요.

 

 

며칠 전 밤 온도가 크게 내려간 탓에 하우스 감자 잎 끝부분이 조금씩 냉해를 입었습니다. 그래도 감자는 강한 작물이니까 이 정도 냉해쯤은 잘 이겨내 줄 겁니다.

 

 

고추 가식 중입니다. 저희야 워낙 여러 가지 다양한 작물들을 조금씩 재배하는 터라 고추 가식도 금방 끝이 나지만, 대부분의 다른 농가들은 고추 농사를 일정 규모 이상 짓기 때문에 가식하는 날엔 다들 정신이 없습니다. 김장 품앗이 하듯 동네 사람들 여럿이 모여 고추 가식 품앗이를 하기도 하지요.

 

 

작년엔 너무 바쁜 나머지 미처 일손이 닿지 않아 그냥 내버려 두었던 하우스 뒤쪽 자투리땅을 올해는 잘 다듬어 부추밭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석회도 넣고, 돌을 골라내고, 미니 포크레인으로 한 번씩 뒤집고, 배수로도 내고, 퇴비도 듬뿍듬뿍 넣어주고.... 조그만 자투리땅이라도 모양을 갖춘 밭으로 만들려면 제법 손이 많이 갑니다. 이틀 동안 집중적으로 공을 들였더니 볼품없던 자투리땅이 이렇게 근사한 밭으로 변신했습니다. 조만간 잘 자란 부추 모종을 내다 옮겨 심을 계획입니다.

 

 

며칠 동안 밭 사이로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한창 퇴비 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50, 100, 150... 처음엔 가뿐한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100포를 넘어가면 슬슬 팔목도 저릿저릿해지고, 퇴비 포대가 100kg 쯤은 되는 것처럼 무겁게만 느껴집니다.

 

 

 

잠시 쉬었다 할까 하고 앉았더니 금세 눕고 싶어집니다. 마침 머리맡에 퇴비 포대가 있어 그대로 베고 누우니 아이고, 맨땅 침대와 퇴비 베개가 이렇게 편안할 수가! 지금껏 안 보이던 건너편 산자락에 산수유 물오르는 것도 보이고, 졸졸졸 도랑물 물 흘러가는 소리도 들리고, 저수지에서 오리떼가 푸득푸득 하는 소리도 들리네요. 아예 장화랑 목장갑도 벗어던지고 잠시나마 살랑살랑 봄바람을 온몸으로 느껴봅니다.

 

 

땅 위를 뭔가가 비슬비슬 기어갑니다. , 너도 깨어났구나? 언제 봐도 반가운 무당벌레가 흙을 잔뜩 뒤집어쓰고서 어디론가 가고 있네요.

 

 

장날 오전에는 장수군 농민회, 장수군 토마토연합회 회원들과 함께 장계 5일장 장터로 나가 동부그룹 불매 운동 홍보를 했습니다. 동부그룹이 최근 몇 년 새 문어발처럼 농업 관련 회사를 하나둘씩 합병하더니 급기야 화성 화옹간척지에 대규모 첨단유리온실을 지어 토마토 농사를 짓는다고 합니다. 앞으로 새만금에 100만평 농업 단지를 조성할 계획이구요. 대기업이 직접 농사를 짓는 일은 농민들한테도 피해가 크겠지만, 이윤추구만을 위한 농사로 재배되는 농산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국민 건강 차원에서도 손해입니다

 

 

장터에 나온 어르신들이 왜 동부한농 농약을 쓰면 안 되나?”하고 묻습니다. “대기업이 농사지어서 농민들 다 죽이려고 한대요 어르신” “아 그래, 그럼 농산물 값 형편없이 떨어지겠구만. 쓰면 안 되지하고 이야기가 금방 통합니다. 농촌에서 불고 있는 동부그룹 불매운동은 평소 농민운동에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았던 농협에서조차 함께 할 정도로 폭발적입니다. 동부그룹은 씨앗, 비료, 농약 등 농민들에게 판매해서 얻는 수입이 엄청난 회사거든요. 이날 홍보전은 많은 농민들의 호응 속에서 각 면별로 플랭카드를 거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바쁜 농사철인데도 많은 농민들이 참여하여 연대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홍보를 하다가 돌아보니 이번 5일장은 말 그대로 봄나물 장이네요. 냉이, 달래, 쑥 등 산과 들에서 뜯을 수 있는 온갖 봄나물들을 할머니들이 직접 캐가지고 나와 파십니다. 살짝 살짝 바람이 차갑기는 하지만 봄나물들을 보니 마음이 따듯해지네요. 묵묵히 우리 산과 들을 지켜온 저 봄나물들처럼, 지금껏 우리 농촌을 지켜오신 할머니들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