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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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9년

시원한 고랭지 여름 농사

백화골 2009. 7. 2. 09:46

“강릉과 대구 등에 열대야 현상이 일어나 밤 기온이 26도까지 올라갔습니다. 장수가 14도로 가장 낮은 밤기온을 기록했습니다” 며칠 전 우연히 라디오 뉴스를 듣다가 장수 이야기가 나와서 반가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장수군은 예전부터 무진장으로 불리는 오지 중의 오지, 대부분 해발 500m 이상 고랭지다. 교통편이 좋지 않아서 소외됐던 지역인데, 아직도 사람들이 잘 모른다.

전북 장수군이라도 아무리 말해도 전남 장수군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고, 전북 장수군 계남면에 산다고 말해도 ‘너 장수마을 산다며?’ 하고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많다. 서울에서 3시간 조금 넘는 거리에 있는데도 아주 먼 남쪽 나라에 있는 곳으로 생각한다. 뉴스에 나오는 것도 매번 전국 최저 기온을 기록했다는 이야기뿐이다.

아무튼, 고랭지 장수 최대의 혜택은 여름에 시원하다는 점이다. 5년째 살면서 여름에 열대야가 있던 날이 지독하게 더웠던 작년 며칠 외에는 없다. 여름밤에도 이불을 꼭 덮고 자야할 만큼 시원하다. 물론 낮에도 다른 지역보다는 덜 덥다. 사람만 시원한 것이 아니라 작물에도 좋아서 여름 상추 등 시원한 날씨를 좋아하는 작물이 그나마 농사가 된다.

7월이 시작되고, 무더위가 슬슬 기승을 부리려고 하는 요즘. 우리는 고랭지에 사는 게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낮 동안 일하며 땀을 흘리더라도 밤이 되면 참 시원하고 좋다. 하늘엔 별도 많고, 시원한 바람도 불고. 올 여름도 비나 태풍 피해만 없이 지나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마을 올라가는 길 전경이 예쁘다. 온갖 나뭇잎들과 풀들이 예쁜 녹색 풍경을 만든다.

 

노지밭 주변 울타리로 심은 돼지감자와 해바라기가 하루가 다르게 커간다.

6월 초에 열리기 시작해서 6월 20일 경 장마가 시작되면 다 떨어지곤 했던 오디가 올해는 비가 많이 안 와서인지 아직도 달려있다. 일하다 따 먹는 오디가 꿀맛이다.

장마가 시작되고, 여름이 오면 반드시 찾아오는 흰가루병. 식용유와 계란 노른자를 이용한 난황유로 어느 정도 잡힐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참외 잎에 오는 흰가루병은 잡기가 힘들다.

토마토에 오는 병중에 제일 무서운 병 중 하나인 배꼽썩음병이다. 칼슘 성분이 부족한 게 원인이다. 올해도 요 병을 예방하고자 계란 껍데기를 식초에 녹여 뿌리는 ‘계란칼슘’을 15일 간격으로 뿌려줬는데도 부족했나보다. 특히 3단 열매들은 대부분 이 병으로 떨어져버린다. 그나마 예년보다는 적다고 위로하며 저녁 무렵 다시 계란칼슘과 바닷물을 섞어서 잎에 뿌려줬다.

수정벌이다. 농약을 많이 쳐서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관행농으로 농사짓는 지역 하우스에서는 수정벌을 사다가도 넣는다는데, 마을 전체가 농약을 전혀 안 쳐서인지 우리 하우스에는 수정벌 천지다. 하도 윙윙 거려서 무서울 때도 있다.

진딧물과 무당벌레 유충이다. 요 유충 한 마리가 하루에 500마리가 넘는 진딧물을 먹어치운다. 여름이 되어 무당벌레가 활동하기 시작하면 진딧물 방제는 요 놈들이 알아서 해준다. 귀한 일꾼들이다.

토마토가 주렁주렁 잘 달렸다. 배꼽썩음병만 제외하고는 이맘 때 오곤 하는 병들이나 벌레들이 아직 안 왔다. 몇 년간 알게 된 방법들을 차근차근 활용하며 이제부터는 당도를 높이기 위해 물 조절을 할 예정이다. 공들인 만큼 맛좋은 토마토가 나와야 할 텐데.

양상추는 보통 이른 봄과 가을에 재배하는데 한번 초여름에 심어봤다. 역시 상태가 안 좋다. 생전 안 올 것 같던 벌레도 많고 비를 몇 번 맞더니 겉은 멀쩡한데 속이 상한 놈들이 많다. 역시 제철이 아닌가보다.

고수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채소 샐러리다. 예전에 어느 물가가 비싼 여행지에서 샐러리와 밥만 먹으며 1주일을 버틴 적이 있다. 씨를 넣고 가식하고, 다시 본 밭에 옮기기까지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공을 들여야 하지만, 일단 심어 놓으면 알아서 잘 자란다.

바빠서 집 주변에 풀을 못 베었더니 완전 풀밭이다. 우리 마을이 귀농자만 모여 사는 마을인지라 이렇게 풀이 그득한데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기존 마을 같았으면 정말 추방당한다.

밭 옆도 역시 풀밭이다. 사실 밭 근처에는 적당히 풀이 있으면 천적도 살아나고 흙 유실도 막아주는 좋은 면이 없지 않은데, 기존 농민들은 무조건 제초제로 풀을 죽인다. 제초제는 농약보다 훨씬 몸에 나쁘고, 땅을 완전히 상하게 하는 정말 나쁜 약이다. 이렇게 풀을 키워도 되는 마을에 사는 게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주변 한 귀농자가 밭 주변에 풀을 좀 키웠다가 마을에서 추방당한 일이 있었다.

쑥갓 꽃이다. 너무 예뻐서 밭 정리해야 되는데도 며칠을 그냥 두고 보았다. 모든 작물의 꽃들은 참 예쁘다. 싹이 올라와 잎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모든 과정이 신비롭고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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