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박정선, 조계환/울주군 두서면 내와1길3/유기농인증번호 : 07100003/연락처 : 010-2336-0748

농부의 하루/2012년 44

볼라벤이 지나간 자리

며칠 전부터 ‘초대형 태풍’이 올 거라는 뉴스 보도가 계속 나왔던 지라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있었습니다. 태풍 전날은 하우스며 집 주변 이곳저곳을 다니며 나름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해두었고요. 하지만 막상 눈앞에서 태풍의 위력이 펼쳐지자 할 수 있는 일이 없더군요. 그저, 마음을 비우고 더 큰 피해가 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자 합니다. 28일 아침 8시 경.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집에서 계속 하우스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맨 앞에 있는 하우스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하우스 한쪽이 철근이 뽑혀서 바람 불 때마다 들썩들썩 합니다. 이럴 땐 비닐을 찢어야 합니다. 하우스가 통째로 날아가는 것보다는 그래도 나중에 비닐만 새로 갈아주는 게 백 번 나으니까요. 칼을 들고 후다닥 내려갔는데 아뿔사, 너무 늦었습니다...

수박, 둥근 호박, 풀매기

해질녁이 되면 집앞으로 보이는 남덕유산이 더더욱 예뻐집니다. 빨갛게 물드는 가을 저녁 하늘을 보며 하루를 마감합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가을 농사가 좌우됩니다. 일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요. 얼마 전에 심은 가을 양배추, 브로콜리는 활착을 잘 했고, 이제 가을 배추와 무를 심을 차례입니다. 요즘 비가 자꾸 내려서 하늘 눈치 보며 틈틈이 밭에 가서 땅 만들기를 하고 있습니다. 참외밭 풀을 며칠째 매고 있어요. 풀 뽑는 일이 힘들지만 다 뽑고 나서 깨끗해진 밭을 볼 때의 그 후련한 기분이란 정말 좋습니다. 집에 놀러온 손님들과 함께 풀을 뽑기도 했는데 뭔가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며 재밌어 하시네요. 그래도 손목이랑 손가락이 얼얼해지도록 힘을 써야 하는 일입니다. 시간도..

이웃들

파란 가을 하늘을 보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폭염이 지나가고 요즘엔 간간이 소나기가 내립니다. 아침 저녁으로는 살짝 찬 바람이 불고요. 매자마을로 이사온 지 벌써 열 달이 넘어갑니다. 귀농, 귀촌자들이 대부분이었던 지난 마을과 달리 매자마을은 오래된 마을입니다. 이웃들도 대부분 토박이 농민들, 노인들입니다. 마을 어르신인 순희 할머니 집 마당입니다. 할아버지가 집에 손볼 곳이 있다며 읍내 나갈 일 있으면 ‘쎄멘’ 한 포만 사다 달라고 부탁하셔서, 시멘트 배달 간 김에 할머니 집 마당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왔습니다. 할머니는 지나가다 만나면 이런 저런 가족사며 마을 이야기들을 들려주시는데, 팔십 다 된 분이 어찌나 말씀을 재미있게 하시는지 마치 친구랑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허리가 잔뜩 구부러져 잘 걷..

가을 농사 시작

여름이 더웠던 만큼 올 가을은 참 재미날 것 같아요. 입추가 되니 거짓말처럼 한낮 폭염이 한풀 꺾이네요. 매년 느끼는 것이지만 절기에 따라 이렇게 바뀌는 걸 보면 참 신기합니다. 마치 날씨가 달력을 보고서 ‘어, 내일이 입추로군. 이제 여름 날씨는 끝내고 가을 시작해야지.’ 하는 것만 같아요. 우리나라 가을 하늘 정말 멋져요. 세계 어느 나라의 하늘보다 멋진 하늘을 보며 일할 수 있다는 건 참 축복이지요. 태풍에 쓰러지고 부러진 옥수수를 수확했습니다. 반 정도가 살아남았는데, 회원들에게 보낼 옥수수를 수확하면서 우리도 벌레 먹은 놈 몇 개 골라 바로 삶아 먹었답니다. 힘들게 자란 놈들이라 그런지 더욱 찰지고 맛있네요. 내년엔 태풍을 피해서 옥수수를 심으면 좋으련만. 집터도 좋고 밭도 넓어져서 좋지만 모든..

여름밤이 좋은 고랭지

정말 더운 날들이었어요. 고랭지 장수도 낮에는 많이 더웠습니다. 그래도 이곳엔 열대야라는 게 없어서 밤엔 이불을 꼭꼭 덮고 잤답니다. 서울과 전주 사는 지인들 얘기를 들어보니 선풍기 틀어놓고 자면서도 계속 땀을 흘려가며 뒤척뒤척 잠 못 이루는 날들의 연속이었다지요? 더위에 정말 고생들 많으셨어요! 일단 해가 떴다 하면 폭염이 시작되니 무조건 새벽 시간을 놓치지 말고 활용해야 합니다. 새벽 안개는 쨍쨍 찌는 낮을 알려주는 예고편이긴 하지만, 새벽 안개를 헤치고 밭으로 나가는 기분은 참 좋습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 토마토가 하루하루 익어가고 있습니다. 일조량이 풍부해서인지 올해는 토마토 작황이 좋은 편입니다. 휴가철을 맞아 많은 손님들이 다녀갔어요. 바쁜 일손을 도와주신 덕분에 계곡에 가서 물놀이도 즐기고 ..

폭염, 옥수수, 단호박

1년 중 가장 더운 시절이 찾아왔습니다. 폭염주의보, 열사병주의보, 찜통더위 같은 말들이 날씨 뉴스를 계속 장식하고 있네요. 모두들 더위에 고생 많으시지요? 장수도 요즘엔 많이 덥습니다. 지글지글 지열이 끓어오르는 땅 위를 박박 기어다니며 일하다보면, 마치 달걀 프라이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래도 다른 지역과 다른 점이라면, 여긴 아직 열대야가 없다는 거예요. 낮엔 정신 못차리게 덥다가도, 저녁이 되면 어느새 서늘한 밤바람이 상쾌하게 불어옵니다. 매일매일 축복처럼 찾아오는 시원한 여름밤은, 고랭지 장수에 사는 즐거움 중 하나랍니다. 뜨거운 여름 햇살에 옥수수가 드디어 알알이 여물었습니다. 가혹한 태풍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장한 놈들이지요. 이번 주에 발송을 앞두고 있고요, 조금씩 시간차를 두고 심..

태풍이 지나가다

7월16일(월) 간간히 소나기 - 콩잎 따다 하루가 가버림 날씨가 계속 흐리고 소나기가 내리던 하루. 역시 콩 순치고 잎 따서 포장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워낙에 콩잎이 가벼워서 무게가 나가지 않는다. 1년에 딱 한번 보내는 것이라 회원들 모두에게 조금 넉넉히 포장해서 보냈는데 하루종일 수확하고 포장하는 데도 일이 끝나지 않는다. 깻잎, 콩잎 등 잎을 따서 보내는 일은 역시나 정말 힘들다. 발송하는 날이면 5시에 택배 기사님이 우리집에 오시는데, 이 시간이 되어도 콩잎 포장은 끝나지 않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하고선 6시30분이 되어서야 발송작업이 끝났다. 여기저기서 빨리 오라고 전화가 오는데도 짜증 한 번 안 내고 편안하게 기다려주신 기사님이 참 고마웠다. 하루종일 콩잎을 땄더니 눈만 감으면 콩..

계속해서 많이 내리는 비

7월10일(화) - 큰 비 오기 전날 찔끔찔끔 비가 내리던 마른 장마가 계속되다 큰 비가 예고됐다. 밤부터 비가 쏟아지고 지역에 따라 국지성 호우가 내린단다. 노지 감자가 반 정도 밭에 남아 있는데 빨리 캐지 않으면 장마에 다 썪어버리게 생겼다. 새벽부터 감자 캐기에 열중하다 아침먹고 감자 캐고, 점심 먹고 감자 캐고, 저녁 먹고 감자를 캐니... 밤이 됐다. 헤드렌턴을 켜고 밤 9시30분에 감자 캐기 완료! 때 마침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기진 맥진이었지만 감자가 그럭저럭 잘 나와서 좋았다. 일찍 캔 감자는 크기가 좀 작았는데 며칠새 비가 간간히 내리면서 크기가 확 커졌다. 7월11일(수) - 빗속의 발송 작업 밤새 비가 쏟아졌다. 감자를 다 캐서 마음이 편했다. 새벽 내내 천둥 번개가 치는 ..

여름 농사

여름이 시작됐습니다. 해발 530m인 백화골은 다른 지역보다는 시원한 편이지만, 그래도 한낮에 일하다 보면 무척 덥습니다. 6월까지는 그래도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수준이었는데, 7월로 접어든 뒤부터는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이 비오듯 쏟아집니다. 매년 이맘 때쯤이면 바쁜 일도 한풀 꺾였었는데, 올해는 계속 일이 밀려 있습니다. 땅이 넓어졌다는 것을 새삼 실감합니다. 작년까지는 땅이 부족해서 고생고생이었는데, 땅이 넓어지니 또 그 때문에 허덕허덕 합니다. 사람 사는 게 항상 상대적인 것 같아요. 토종 자주 감자를 캤습니다. 가뭄에도 잘 자라주었어요. 캐면서도 어찌나 먹음직스럽고 예쁜지 땀으로 흠뻑 젖어가며 일하는 보람이 있습니다. 역시 농사는 수확할 때가 제일 재밌는 것 같아요. 토종 감자는 일반 감자보..

마른 장마와 노린재

#마른 장마 그제는 오랜만에 비가 내렸습니다. 일기 예보로는 장마 시작이라는데, 장마라는 말이 이렇게 반가운 해는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비 오기만을 기다리며 심지 못했던 들깨 모종도 비 맞으며 옮겨심고, 촉촉한 땅에 팥도 심었습니다. 장마라는 말이 무색하게 비는 딱 하루 오고 말았지만,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좀 살 것 같습니다. #농활대 지난 주엔 장수에 농활대가 다녀갔어요. 익산의 원광대학교 학생들이었는데, 우리 마을엔 문예창작학과 학생들 11명이 들어왔습니다. 우리 집에선 이틀 동안 네 명이 와서 일을 해주었고요. 농활대가 오기 전 “대학생들이 뭐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 그냥 풀이나 뽑으라고 하지.” 라고 말했던 것이 미안할 정도로, 다들 정말 열심히 일을 해주었고 밀린 일거리 해소에 큰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