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박정선, 조계환/울주군 두서면 내와1길3/유기농인증번호 : 07100003/연락처 : 010-2336-0748

농부의 하루/2012년 44

시골 마을 대보름 잔치

정월 대보름입니다. 시골에선 대보름이 아주 큰 행사입니다. 마을마다 남정네들이 모여 달집에 쓸 나무 하느라 바쁩니다. 여자들은 음식 준비를 하고요. 나무를 할 만한 여력이 안 되는 마을에선 행사를 그냥 생략하기도 하지요. 우리 마을에서도 몇 해 동안 대보름 행사를 하지 않고 넘어갔다고 하네요. 올해 대보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며칠 전부터 어르신들끼리 의논들 하시더니, 젊은 사람도 새로 들어왔고 하니 하자고 결론을 내셨습니다. “나무는 저희가 해놓을게요” 했는데, 어느 틈에 어르신들 몇 분이서 싹 해놓으셨더군요. 젊은 사람들 다른 일 하느라 바쁠 텐데 신경 쓰지 말라고, 그냥 달집 태울 때 참석만 해주어도 고마운 일이라고 말씀하시네요. 이렇게 황송할 데가... 이른 저녁 무렵 회관에 내려가니 벌써 막걸리와..

아침 풍경

올 겨울 들어 최고로 많은 눈이 내릴 거라는 뉴스 덕에 미리부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지요. 전국적으로 폭설이 내렸다는 하룻밤을 지나고 난 오늘 아침, 창문을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이 “자, 게으름 부리지 말고 얼른 얼른 나와야지!” 하고 재촉합니다. 아침밥은 생략하고, 세수도 생략하고, 옷만 든든히 챙겨입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해가 뜨기 전이라 세상은 아직 파르스름한 빛에 잠겨 있네요. 장독들 키가 하룻밤새 한뼘씩 커져 있습니다 열 네 개 하우스 문짝 용접을 무사히 다 마치고, 어제 하나 달아놓았더니 내려다 보는 맘 뿌듯합니다. 영하의 날씨에 쇠파이프를 만지며 일하다보면 손이 금방 꽝꽝 얼어버리곤 합니다. 일 진행되는 속도는 영 더디지만, 그래도 이렇게 조금씩 모양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한겨..

채소 눈사람

밤새 대설주의보가 내렸다가 해제된 오후, 백화골에 정체불명의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수수 팔, 당근 모자, 고수 머리카락, 적양배추 눈, 호박씨 코, 배춧잎 목도리. 채소 눈사람 씨, 안녕하세요? 배추 목도리가 멋지게 잘 어울리시네요! 눈으로 뒤덮인 산골마을에선 의외로 할 일이 많답니다. 이른 아침부터 눈을 쓸기 시작해 큰길까지 다 쓸고 나면 벌써 점심 때가 되고요,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과 김치만두국으로 점심 먹고 나면 신나는 눈썰매장으로 변해버린 과수원 옆길에서 마을 아이들과 눈썰매도 타야 되고요, 저장해두었던 야채들 겉잎으로 재미있는 눈사람도 만들어야 하거든요. 이런, 벌써 하루가 다 지나가버렸네요. 고라니 두 마리가 저녁빛을 받으며 앞산 산등성이를 겅중겅중 뛰어갑니다. 이런 겨울철에 저놈들은 뭐 먹고..

뜰 앞의 잣나무

한 사람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달마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 “뜰앞의 잣나무니라.” 선가의 유명한 화두이지요. 서역의 달마대사가 동쪽으로 오신 까닭, 즉 무엇을 전하기 위해 온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뜰앞의 잣나무’였다고 합니다. 선지식의 혜안에 깊이 고개 숙일 따름입니다. 새로 이사온 집 앞에 듬직하게 잘 생긴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습니다. 거실 창문 정면으로 내다보이는 나무입니다. 나무에 대해 워낙 아는 게 없는지라, 뾰족뾰족 푸른 잎으로 미루어보아 그저 소나무의 일종이려니 생각했지요. 다행히도 누군가 와서 저 나무가 바로 잣나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아하... 뜰 앞의 잣나무를 바로 눈앞에 두고도 모르고 살고 있었군요. 흰 눈이 곱디곱게 내리는 2012년 첫 날 아침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