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녁이 되면 집앞으로 보이는 남덕유산이 더더욱 예뻐집니다. 빨갛게 물드는 가을 저녁 하늘을 보며 하루를 마감합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가을 농사가 좌우됩니다. 일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요. 얼마 전에 심은 가을 양배추, 브로콜리는 활착을 잘 했고, 이제 가을 배추와 무를 심을 차례입니다. 요즘 비가 자꾸 내려서 하늘 눈치 보며 틈틈이 밭에 가서 땅 만들기를 하고 있습니다.
참외밭 풀을 며칠째 매고 있어요. 풀 뽑는 일이 힘들지만 다 뽑고 나서 깨끗해진 밭을 볼 때의 그 후련한 기분이란 정말 좋습니다. 집에 놀러온 손님들과 함께 풀을 뽑기도 했는데 뭔가 중독성이 있는 것 같다며 재밌어 하시네요. 그래도 손목이랑 손가락이 얼얼해지도록 힘을 써야 하는 일입니다. 시간도 정말 많이 들고요. 유기농 농사 짓는 농민들이 제일 힘들어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올해 처음 심어본 둥근 호박입니다. 애호박이 요맘때가 되면 수확량이 떨어지길래 시기를 조정해서 좀 늦게 심어본 건데, 얼마 전부터 첫 열매를 수확하기 시작했습니다. 반질반질하고 동글동글한 것이 너무 귀엽고 예쁘네요. 해마다 이렇게 새로운 품종에 도전해서 키우고 수확하는 재미도 제철농산물 회원제를 하는 즐거움인 것 같아요.
올해 겁 없이 수박을 심었습니다. 거기에다 비가림 시설도 하지 않고 노지에다가요. 수박이 유기농으로는 재배가 아주 힘들다고 하여 생협에서도 보통 저농약 수박이 나오더군요. 그래서 아예 엄두도 안 냈었는데, 작년에 텃밭에서 몇 주 해보니까 그다지 어렵지 않은 거예요. 작년의 작은 성공만 믿고 올해 모든 회원들에게 보낼 계획으로 수박을 심었습니다. 원래 수박은 한 주에 하나씩만 착과를 시켜서 크게 키우는 것인데, 택배로 보낼 땐 작은 것이 좋겠다 싶어 한 주에 두 개씩 달아서 키워봤습니다.
수박이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구별할 수가 없어서 주변에 수박 재배해봤던 농민들에게 물어봤더니 조금씩 아리송한 대답들만 돌아옵니다. 두드렸을 때 청명한 소리가 나면 된다, 잔솜털이 없어지고 검은 줄무늬가 선명해진다, 꼭지가 조금 안으로 들어간다 등등... 도대체 ‘청명한 소리’의 기준이 뭔지도 모르겠고 검은 줄무늬는 모든 수박들이 다 선명해보이는데 이를 어쩌나, 하다가 며칠 전 시험삼아 한 통을 따서 갈라보니 벌써 속이 예쁘게 익었습니다. 고슴도치의 자식사랑인지는 몰라도, 관행농 수박과는 전혀 다른 맑고 싱싱한 단맛에 한 통을 그 자리에서 다 먹어버렸답니다. 수박이 익는대로 차례차례 발송할 예정인데, 앞으로 비가 많이 안 오고 수박이 잘 익어서 모든 회원분들 밥상으로 수박을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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