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초대형 태풍’이 올 거라는 뉴스 보도가 계속 나왔던 지라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있었습니다. 태풍 전날은 하우스며 집 주변 이곳저곳을 다니며 나름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해두었고요. 하지만 막상 눈앞에서 태풍의 위력이 펼쳐지자 할 수 있는 일이 없더군요. 그저, 마음을 비우고 더 큰 피해가 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자 합니다.
28일 아침 8시 경.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집에서 계속 하우스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맨 앞에 있는 하우스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하우스 한쪽이 철근이 뽑혀서 바람 불 때마다 들썩들썩 합니다. 이럴 땐 비닐을 찢어야 합니다. 하우스가 통째로 날아가는 것보다는 그래도 나중에 비닐만 새로 갈아주는 게 백 번 나으니까요.
칼을 들고 후다닥 내려갔는데 아뿔사, 너무 늦었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하우스가 통째로 붕 날아오르더니 옆 하우스를 덮쳤고, 옆 하우스도 곧 같이 날아올랐습니다. “어, 어!” 하는 사이에 거대한 철골 구조물 흉기로 변한 하우스 두 동이 물탱크 창고를 덮치더니 금세 집 앞 도로까지 날아올라옵니다. 이제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이 철골들을 최대한 진정시키는 것이 급선무가 됐습니다. 둘이서 칼을 들고 미친 듯이 비닐을 찢어내고 있는데, 이런 노력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곧 불어오는 강풍에 하우스들은 가볍게 날아오르더니 마당까지 날아오릅니다. 다행히 바람 방향이 집 쪽이 아니고, 사람 서 있던 방향 쪽이 아니라서 집도, 사람도 무사했습니다. 더 이상 밖에 있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해 그냥 모든 걸 하늘에 맡기고 집 안으로 철수했습니다.
결국 날아다니던 하우스는 전깃줄에 걸려 얽혔고, 그 힘 때문에 전봇대 두 대가 곧 쓰러질 듯 기울었습니다. 한전 직원들이 저녁에 와서 비를 맞으며 전신주에 올라가 임시 조치를 취해주고 가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덕분에 집에 전기가 들어와서 다행입니다. 유선 전화와 인터넷도 잘 되구요.
볼라벤이 훑고 지나간 자리. 하우스 네 동 중에서 두 동은 완전히 날아가 휴지조각이 되었고, 한 동은 비닐이 찢어져 날아가진 않았지만, 안에 심어져 있던 애호박과 오이는 완전히 너덜너덜 해졌습니다. 토마토가 심어져 있던 나머지 한 동은 토마토들이 워낙 튼튼하게 붙잡고 있던 터라 날아가진 않았는데, 바람의 힘을 못 이기고 역시나 엿가락처럼 구부러져 폭삭 주저앉아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우스 안에서 자라고 있던 작물들은 모두 태풍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손 쓸 도리가 없는 불쌍한 모습이 되고 말았네요. 노지에 심어서 한창 자라고 있던 양배추, 브로콜리도 바람에 꺾여 거의 다 전멸했습니다. 집 창문으로 보이던, 우리가 좋아하던 ‘뜰앞의 잣나무’도 뿌리채 뽑혀 고요히 누워있네요. 무슨 문제 때문인지 핸드폰은 하루종일 서비스 지역을 벗어나 있다며 불통입니다.
태풍의 기운이 조금 진정되면서 주변 상황을 살펴보니 바람이 계북면에서도 유독 우리 마을쪽에 큰 피해를 주고 간 듯합니다. 이웃이 하는 과수원 사과나무들은 열매가 떨어지다 못해 아예 나무들이 다 누워서 잠을 자고 있다고 하고요, 마을회관 지붕과 마을 어르신 집 창고 지붕이 통째로 날아가버렸습니다. 인삼밭 하는 형님도 하우스 파이프가 다 폭삭 주저앉아 손쓸 수 없이 되었다고 하고요. 그래도 이런 상황 속에 인명 피해가 없었다는 건 불행 중 다행입니다.
항상 뉴스로만 보던 자연재해를 이렇게 직접 당하게 되니 그저 멍한 기분입니다. 내일쯤 되면 좀 실감이 나려나요. 올해 가을농사는 어떻게 해야할지, 복구작업은 어떻게 해야할지,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가 점점 더 복잡해지겠지요. 얼른 기운 차리고 내일부터 복구작업에 온힘을 다할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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