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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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1년

고양이망 설치

백화골 2011. 4. 10. 22:30

아침에 모종들을 살펴보다 버럭 성질을 내고 말았습니다. 엊그제 새로 씨앗을 넣은 모종판들 위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누군가의 발자국! 토마토 모종판 위에서 시작해, 단호박을 거쳐, 방울토마토까지 유유히 밟고 걸어간 범인의 주인공은 바로 고양이입니다. 쌀쌀한 날씨에 따뜻한 곳을 찾아 모종하우스 안으로 기어들어온 것이죠.

모종판의 흙은 아주 부드러운 상토이기 때문에, 고양이가 밟고 지나가면 흙이 푹 꺼져들어가게 됩니다. 이제 막 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발아 준비를 하던 씨앗 입장에서 보면 날벼락이 따로 없는 셈이지요.

고양이가 모종 하우스에 들어와 모종판을 밟아놓고 간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그동안 오이 두세 주, 청경채 서너 주, 배추 한두 주 정도 밟아놓은 전력이 있긴 하지만, 피해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정상 참작을 해주었더니 오늘 이렇게 좀 더 대담한 범죄행각(?)을 벌이고 간 것입니다. 단호박 다섯 주, 토마토 세 주, 방울토마토는 무려 일곱 주나 짓밟아 놓았습니다. 여기에 보너스로 시금치 밭에 고양이 똥까지 남겨놓은 걸로 봐서, 이 범인은 아주 대담한 놈임에 틀림 없어 보입니다.

참고로 토마토 씨앗은 좀 많이, 꽤, 상당히 비쌉니다. 이 작은 씨앗 한 봉지의 가격이 얼마나 될까요? 탈탈 털어 손바닥 위에 올려 놓으면 티스푼으로 한 두 숟가락 될까 말까 하는 정도밖에 안 되는 분량이지만, 값은 무려 8만원이나 합니다. 청경채를 밟아놓았을 때보다 아무래도 살짝 더 성질이 나려고 합니다. ^^;;

이미 유유히 도타해 어디 양지바른 곳에서 낮잠이나 자고있을 범인을 향해 언제까지 성질만 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어떻게 할까 잠시 궁리하다가 창고에 있는 고라니망을 고양이망 대용으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그러고보니 두 골칫꾼들이 이름도 비슷하군요). 하우스 양 옆 개폐기 올라가는 부분에 고라니망을 두르고 하우스 클립으로 고정시키니 간단합니다. 혹시라도 지략이 비상한 범인이 망을 들추고 틈새로 들어올까 염려되어 망이 땅에 닿는 부분은 여유있게 늘어뜨린 다음 삽질을 하여 단단히 묻었습니다. 이 정도 방비를 했으니 이제 다시 고양이가 들어와 난장판을 벌일 일은 없겠지요.

그건 그렇고, 이렇게 가끔 말썽을 부리는 고양이들은 집고양이도 아니고 길고양이도 아닌,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마을 고양이’ 정도 되는 놈들입니다. 몇 년 전 마을 사람 하나가 쥐 잡는다고 들여온 고양이 한 마리가 몇 년 새 수십 마리로 불어나 이제는 마을 곳곳에 고양이들이 쏘다닙니다. 쥐 같은 작은 동물도 잡아 먹지만, 사람들이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나 가끔 던져주는 먹이에 의존하는 비중도 꽤 커 보입니다. 조금 귀찮긴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리 큰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이제 마을 주변 생태계의 일부가 된 놈들이니 같이 살아갈 방법을 연구해보는 것이 해결책이겠지요.

이제 고양이가 들어와 괴롭힐 일도 없을 테니 놀란 토마토, 단호박들 얼른 마음을 진정시키고 무사히 싹을 내밀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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