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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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제철꾸러미/2022년~2024년

백화골 제철꾸러미 추천요리 - 2022년 열일곱 번째 주 노각무침

백화골 2022. 8. 30. 20:32

 

어느 새 추석 연휴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이번에 보내드리는 열일곱 번째 꾸러미가 추석 전에 보내드리는 마지막 꾸러미가 되겠습니다. 다음 주는 추석 택배 대란을 피하기 위해 꾸러미 발송을 한 주 쉽니다. 열 여덟 번째 꾸러미는 추석 연휴가 끝나고 난 뒤인 14일(수)과 16일(금), 이렇게 보내드릴 예정이에요. 이번 주 보내드리는 농산물꾸러미에는 땅콩 호박(또는 멧돌호박), 찰옥수수, 애호박(또는 가지), 노각, 대파, 오이, 풋고추, 청양고추 등을 담았습니다.

 

이번 주에 보내드리는 채소들 중에서는 노각 무침을 소개해드릴까 해요. 노각에 처음 도전하는 분이라면 일단 거칠고 노란 껍질과 커다란 몸집에서부터 부담감을 느끼실 텐데요, 사실 한 번이라도 노각 무침을 만들어보신 분이라면 정말 쉽고 간단한 요리라는 걸 아실 거예요.

 

 

노각은 말 그대로 늙은 오이예요. 모든 오이가 다 노각이 되는 것은 아니고, 여러 가지 오이 품종 중에서도 백다다기 오이를 수확하지 않고 오래 늙히면 노각이 되지요. 요즘에는 노각 전용 오이 품종이 따로 나오기 때문에 더 크고 맛 좋은 노각을 재배할 수 있어요.

 

오이를 제 때 그냥 따먹으면 되지, 왜 굳이 늙혀서 먹느냐고요? 호박도 애호박 맛이 따로 있고 늙은 호박 맛이 따로 있듯이, 오이도 풋 오이와는 또 다른 노각만의 맛이 있거든요. 오이 특유의 아삭아삭하고 상큼한 맛에 약간의 신맛과 쓴맛이 더해져서 더 넓고 깊은 맛이 난다고 할까요. 더구나 노각으로 무침을 해놓으면 살짝 꼬들꼬들한 식감이 나기 때문에 밥반찬으로 그만이에요. 입맛 없을 때는 밥에 노각무침 넣고 들기름 한 숟가락 넣어 비벼 먹으면 뚝딱 밥 한 공기가 비워진답니다.

 

노각은 먼저 물에 씻은 다음, 위의 꼭지 부분만 조금 잘라낸 뒤 감자칼로 슥슥 밀어 껍질을 벗겨주세요. 하얗게 속살을 드러낸 노각을 세로로 반으로 가른 다음, 숟가락을 이용해 속의 씨 부분은 파내어 버립니다. 반으로 자른 상태 그대로 얇은 반달썰기를 해주셔도 되고요, 노각이 좀 크다 싶으면 세로로 한 번씩 더 썰어 4등분 한 다음 단무지 두께 정도로 썰어주세요.

 

 

썰어놓은 노각에 소금을 솔솔 뿌려 골고루 섞어줍니다. 소금 양은 그렇게 많지 않아도 돼요. 노각 크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충 노각 한 개에 2~3티스푼 정도면 충분할 거예요. 이 상태로 2~30분 정도 절여주세요. 금세 물이 많이 나올 거예요. 노각 무침은 이 다음이 가장 중요한데요. 베보자기나 채반을 이용해서 물기를 최대한 꼭 짜주세요. 귀찮다고 대충 물기를 짜내고 무치면 노각 무침 특유의 꼬들꼬들한 맛을 제대로 낼 수가 없어요. 손아귀 힘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가능한 물기를 꼭 짜내는 것이 핵심이에요.

 

 

물기를 짜낸 노각에 이제 취향에 따라 양념장을 넣어 무치면 돼요. 노각 무침 양념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하나는 개인적으로 백화골에서 선호하는 방식인데요. 고추장, 고춧가루, 들기름이나 참기름, 깨소금 이렇게만 넣고 담백하게 무치는 방법이에요. 노각 무침을 접시에 얹은 뒤 고명으로 대파 파란 부분을 얇게 썰어서 올려주면 더 좋고요. 또 다른 방법은 비빔국수 양념처럼 새콤달콤하게 무치는 방법인데요. 고추장, 고춧가루, 식초, 매실액, 다진마늘, 깨소금 이렇게 넣어서 무쳐먹어도 맛있어요. 단, 노각무침을 만들어 바로 다 드시지 않고 보관해가며 천천히 드시는 경우라면 들기름이나 식초는 미리 넣지 마시고 그때 그때 먹기 직전에 넣어서 무쳐 먹는 게 더 맛있답니다.

 

 

백화골 농산물꾸러미 열 일곱번째주 풍경

 

 

어느새 9월 시작입니다. 하늘이 정말 파랗습니다. 쨍쨍 내리쬐던 햇볕이 사라지고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어요. 밭으로 가는 길에 심어진 벚나무 잎이 벌써 노랗게 변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논의 벼이삭도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네요. 올 여름은 뭔가 반짝 하고 갑자기 사라진 느낌입니다. 농부의 시간은 언제나 참 빨리 갑니다.

 

 

작년에 8월 중순에 배추를 심었다가 9월 폭염과 잦은 비로 나방 애벌레와 무름병 피해를 크게 입었습니다. 작년 영농기록을 기준 삼아 올해는 배추 심는 시기를 조금 늦췄습니다. 미리 만들어 놓은 두둑에 구멍을 뚫고 벌레 방제를 위해 미생물 유기농 자재를 뿌리고 배추를 심었습니다. 심고 나서 바로 한랭사를 씌워 나방이나 나비, 벌레가 들어가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았습니다. 해가 갈수록 가을 날씨가 변덕스러워져서 유기농 김장 배추 농사가 점점 어려워져 갑니다. 올해는 더 철저히 대비하고 미리미리 방제해서 잘 키워보려구요.

 

배추를 심으면서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 배추의 공식 영어 이름은 '김치 캐비지’(Kimchi Cabbage)라고 알려주었습니다. 2012년 이전에는 국제식품분류상 ‘차이니즈 캐비지’(Chinese Cabbage) 중 하나로 불렸지만, 김치의 종주국 한국 배추를 중국 배추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해서 한국 정부가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 제안, 2012년부터는 국제적으로 한국 배추를 ‘김치 캐비지’라고 부릅니다. 외국인 봉사자들에게 농사일뿐 아니라 우리 농사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고유한 특성을 보여주는 일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주에는 찰옥수수를 수확했습니다. 옥수수는 비바람이 강하게 불면 쓰러지고, 열대 거세미 나방 등이 어린 시절 잎을 완전 갉아먹기도 하고, 다 익으면 고라니나 멧돼지, 들쥐 등이 먹어서 제대로 수확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옥수수가 익어갈수록 매일 아침에 밭에 나가면 제일 먼저 옥수수가 잘 있나 확인하곤 했는데, 다행히도 잘 살아남아주어서 회원분들에게 무사히 발송할 수 있었습니다.

 

 

캐나다 친구 키스톤이 꾸러미에 들어가는 찰옥수수를 같이 수확하더니, 문득 오늘 저녁에는 자기가 요리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셰퍼드 파이를 만들고 싶다고요. 셰퍼드 파이라면 영국 전통 요리로, 양치기들이 만들어 먹던 소박한 음식인데요. 원래는 양고기나 쇠고기가 들어가는 고기요리예요. 키스톤은 그냥 있는 재료를 이용해서 채식이자 한국식으로 변형시킨 셰퍼드 파이를 만들겠다고 하네요.

 

 

키스톤이 만든 셰퍼드 파이 레시피는 다음과 같아요. 먼저 메주콩을 삶아서 반쯤 으깬 뒤 된장을 넣어 버무려요. 옥수수는 살짝 찐 다음 옥수수 알만 따로 긁어내요. 마지막으로 감자를 껍질 채 삶아 으깬 뒤, 채썰어 볶은 양파와 볶은 마늘, 고춧가루, 소금, 올리브오일을 넣고 버무려줘요.

 

 

이제 접시 위에 세 가지 재료를 케이크처럼 3단으로 쌓아줘요. 맨 밑에 콩을 깔고 중간에 옥수수 알을 넣은 뒤, 맨 위에 으깬 감자로 덮어주면 완성이에요.

 

백화골에서 만드는 요리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레시피에 채소를 맞추는 게 아니라 채소에 레시피를 맞춘다’ 인데요. 키스톤이 만든 셰퍼드 파이는 딱 백화골 요리 스타일이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원래 모습에서 많이 변형시킨 음식이 과연 맛있을까 싶은 우려가 쏙 들어갈 만큼 정말로 맛있었답니다. 키스톤의 요리 덕분에 모두들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지난 8월 한달 동안 백화골에 머물며 일손을 도와주었던 포르투갈 친구 토마스와 안나가 이제 내일 떠납니다. 그 동안 엄청난 폭염 속에서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쏟아내며 일손을 도와주었고, 한국과 포르투갈의 요리, 역사, 생활 등 다양한 문화를 공유하며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내일 아침에 이 친구들을 떠나보내려니 아쉽네요. 이렇게 만나면 헤어지는 생활 속에서 정을 쌓으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해봅니다.

 

9월이 시작되면서 역시 태풍 하나가 한국 쪽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태풍 경로는 워낙 예측불허인 경우가 많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부디 살짝이라도 빗나가서 평화로운 가을 날씨를 선물해주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