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처서입니다. 우리의 24절기는 날씨의 변화와 그에 따른 농사일과 생활의 변화를 담고 있지요. 도시에 살던 시절에는 그런 게 있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살았지만, 농사짓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시절에 딱딱 들어맞는 24절기가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처서라는 말을 그대로 풀이하면 ‘더위를 처리한다’는 뜻이랍니다. 물론 처서 이후에도 땀 흘릴 날들이야 많이 남아있겠지만, 바람과 공기가, 햇살과 하늘이 확실히 달라진 것이 느껴집니다.
여름 동안 눅눅해졌던 이불을 제법 높고 청명해진 하늘 아래 펼쳐 말리며 이제 막 시작된 가을의 공기를 느껴봅니다. 단호박, 꽈리고추, 애호박, 쇠비름, 양파, 가지, 오이, 공심채, 호박잎 등 이번 주에 보내드리는 백화골 채소들이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한 이 자연의 느낌을 여러분께도 오롯이 전달해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농산물꾸러미 받으면서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8월에 접어들면서 꾸러미 품목들 중에 녹색 잎채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뚝 떨어지고 대신 열매채소들이 많아졌어요. 잎채소들은 대부분 더위와 장마에 약해 그냥 녹아내리기 일쑤거든요. 이번 주에는 그래도 녹색 잎이 세 가지나 들어가네요. 호박잎, 공심채, 쇠비름.
호박잎은 같이 보내드리는 동봉장에 자세히 설명해 드린 대로, 살짝 쪄서 쌈장을 곁들여 드시면 되고요, 이미 여러 차례 보내드렸던 더위에 강한 채소 공심채는 팬에 기름 살짝 두르고 달달 볶아서 드시면 됩니다. 남은 한 가지가 바로 쇠비름인데요. 오랫동안 백화골 유기농 꾸러미를 받으셨던 단골 회원분이라면 쇠비름이 그리 낯설지 않으실 거예요. 거의 매년 한 번씩은 빠뜨리지 않고 보내드렸던 품목이니까요. 하지만 올해 처음 꾸러미를 받는 분이라면 이름부터 낯설지도 모를 텐데요. 이번 주에는 이 쇠비름 요리하는 법을 소개해드릴게요.
비름나물 종류는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참비름과 쇠비름. 참비름은 그냥 비름나물이라고도 불리고, 시장에서도 종종 만날 수 있지요. 쇠비름은 흔하면서도 흔하지 않아요. 일반적으로 먹는 채소가 아니기 때문에 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지만, 일단 들과 밭에 나가면 사방천지에서 잘 자라는 풀이 바로 쇠비름이거든요. 생명력이 어찌나 강한지 독한 가뭄에도 살아남고, 며칠 동안 쏟아 붓는 장대비에도 끄떡없지요.
그런데 이렇게 어디서나 잘 자라는 흔한 풀 쇠비름이 엄청난 수퍼 푸드이기도 하다는 사실 아시나요? 천연 항산화 성분과 오메가 3, 칼륨 등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건강식품이에요. 이런 쇠비름의 엄청난 효능을 우리 조상들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나 봐요. 예로부터 쇠비름을 ‘장명채’, 즉 먹으면 장수하는 풀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보면 말이지요.
쇠비름은 먼저 물에 깨끗이 씻어주세요. 씻다보면 물그릇 밑에 아주 작고 까만 알갱이 같은 것이 보일 수도 있어요. 이건 쇠비름 씨앗이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쇠비름은 생으로 먹어도 되고 데쳐서 나물로 드셔도 되는데요, 생으로 드실 때는 총총 썰어서 초고추장 무침을 만들어 드시거나 물김치에 넣어 드실 수도 있어요. 샐러드에 넣거나, 상추쌈에 쌈채소로 곁들이셔도 되고요. 하지만 아무래도 한꺼번에 많이 먹으려면 데쳐서 나물로 먹는 방법이 편하겠지요.
씻은 쇠비름을 끓는 물에 잠깐 데친 후 꺼내주세요. 찬물로 헹궈내 물기를 적당히 짜낸 다음,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좋아하는 양념에 무쳐서 드시면 돼요. 백화골에서는 된장, 다진마늘, 들기름, 깨소금 양념에 무쳐보았어요. 살짝 아삭아삭한 식감에 풋풋한 풀 맛, 살짝 쓴 맛, 그리고 독특한 신 맛이 나요. 그리고 씹을수록 약간 미끈미끈한 점액 성분이 나오지요. 익숙하게 먹던 채소가 아니라 처음엔 조금 거부감이 느껴지실 수도 있는데요. 이런 분이라면 쇠비름 비빔밥을 만들어 드시는 걸 추천해 드려요. 쇠비름 나물을 다른 채소들과 섞어서 밥에 넣고 고추장과 함께 슥슥 비벼놓으면, 낯선 채소에 대한 부담감도 없고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비빔밥이 된답니다.
백화골 농산물꾸러미 열 여섯번째 풍경
이번 주는 캐나다 친구 키스톤이 합류하면서 밭 일이 하나둘씩 줄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봉사자가 많으니 함께 하는 기운이 일을 덜 힘들게 하고 일 진도도 착착 나가네요. 가을 작물도 거의 다 심어가고, 잡초들도 쑥쑥 뽑아가면서 신명나게 일하고 있습니다. 더운 여름이 지나가는 것이 조금은 아쉬울 정도로 날씨도 선선해져서 가을이 코앞에 나가왔구요.
이번에 찾아온 키스톤은 엄청난 한국 문화 팬이네요. 한국말도 혼자서 공부했는데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될 정도로 잘 하고, 한국 문화 뿐만 아니라 한국 역사까지 공부할 정도로 한국을 좋아하는 친구입니다. 한국인은 잘 모르는 한국의 매력을 외국인 친구들을 통해 알게 되어 좋습니다. 많은 외국 친구들과 함께 지내고 일하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세계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을 깨닫게 되고, 더 마음을 열고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즐겁습니다. 한국 산골에서 이렇게 세계인들을 만나 여행자처럼 생활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일 마치고 경주 관광지로 짧은 소풍을 나갔습니다. 산 속에 있는 곳에 찾아가느라 길이 험해서 고생고생 했지만, 좋은 친구들과 함께 있어서인지 해질 무렵 풍경이 더욱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아쉽지만 이번 주까지가 2022년 여름일 듯 싶네요. 여름의 끝에서 백화골 농부들은 이제 가을로 찬찬히 들어갑니다. 올 가을은 더 풍요롭고 아름다운 계절이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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