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초봄부터 파종하며 시작했던 2020년 농사가 이제 전반기를 마치고 여름 농사로 넘어갔습니다. 바이러스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 이 시기에, 농사짓고 사는 일상을 변함없이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론 조금 미안한 마음입니다. 하루빨리 바이러스가 사라지고 전세계인이 함께 어울리며 살 수 있는 날을 기다립니다.
올 봄 날씨가 농사짓기 좋았습니다. 사람들이 이동을 덜해서인지 공기도 더 맑아지고 지난 몇 년 동안 찾아왔던 이상기후도 사라졌습니다. 적당히 비가 내리고 지나치게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가 이어졌습니다.
맑은 공기 속에서 농사지으니 마음도 따라 평온합니다.
역대 최고로 잘 자란 완두콩, 작년에는 두더지가 싹이 올라오자마자 통 채로 먹어버려서 많이 속상했었는데, 올해는 두더지 피해가 없어서 완두콩을 실컷 수확하고 제철꾸러미에도 넉넉히 넣어 발송했습니다.
해 뜨기 전에 일어나고, 해 지면 일마치고 밥 먹고, 자고... 단순 소박한 농부의 일상이 이어졌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원래 오기로 했던 외국인 봉사자들은 취소를 했지만 한국에 남아 있던 외국인 봉사자 몇 명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6월 말이 되자 봉쇄됐던 국경이 풀리면서 발 묶여있던 외국인 봉사자들이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고, 백화골에는 8년 만에 봉사자 없는 일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최근 몇 년 동안은 너무 많이 밀려드는 유럽 봉사자 친구들 때문에 조금은 지쳐있었는데, 이 친구들이 그동안 얼마나 일에 큰 도움이 되었었는지 실감했습니다. 사진 속 벨기에, 프랑스 친구들이 올봄 마지막 외국인 봉사자였습니다. 착하고 일도 잘하고 유기농에 대해 이해하는 좋은 친구들이었어요.
큼직하게 자라준 비트, 엄청난 벌레 공격에도 살아남아준 브로콜리, 일찍 파종해서 크게 자란 대파, 작년 가을부터 깊게 땅 쟁기질 하며 심어 잘 자란 마늘, 일찍 순지르기를 하여 자리를 잘 잡은 가지, 야생동물 피해에서 살아남은 콩잎, 곰팡이병과 청고병 피해 없이 잘 자라주고 있는 토마토, 더위를 견디며 파릇파릇 크고 있는 여름 상추까지... 최근 백화골 작물들입니다. 봉사자가 없어서 다시 하루 14시간씩 일하는 농부의 일상으로 돌아가 살고 있지만 재미있습니다. 작고 평온한 일상이 즐거워요.
오랜만에 찾아온 외국인 학생 친구들, 한국인 봉사자 분들과 함께 당근을 수확하고 이런저런 농사일을 같이 했습니다. 혼자 일하는 것도 좋지만 함께 일하는 것도 참 좋네요. 여름의 문을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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