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느끼는 것이지만 농사를 짓다보면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갑니다. 쑥쑥 자라는 채소들 따라 정신없이 보살피고 수확하고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벌써 다섯 번째 꾸러미 발송을 앞두고 있네요. 푸릇푸릇하던 봄기운은 완연히 꺾이고, 이제 싱그러운 초여름 채소들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 동안 백화골은 지금까지 보냈던 5월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5월을 보냈습니다. 1년 중 최고로 아름다운 계절과 풍광 속에서, 1년 중 가장 바쁜 농사일들을 해내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지냈지요.
네, ‘여느 해가 다르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 올해는 이것이 얼마나 큰 특혜이자 축복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여느 때와 달라진 일상 때문에 힘들게 보내신 분들이 너무나도 많았으니까요. 물론 학교 급식이나 식당 수요 등이 크게 줄어들면서 농업계도 큰 타격을 입긴 했지만, 직거래를 하는 소농인 저희 같은 경우는 코로나 사태로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은 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더 좋아진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사태에 전지구적으로 환경 오염이 줄어든 덕분인지, 올해처럼 맑은 공기 속에서 이상 기후 영향 없이 순탄하게 봄 농사철을 지낸 것도 정말 오랜 만인 듯합니다. 이상 고온이 없었던 덕에 벌레들도 많이 줄어들어 채소들도 비교적 깨끗하게 잘 자라주고 있답니다.
저희가 코로나 사태 때문에 받은 유일한 영향이라면, 예약되어 있던 외국인 여행자 봉사자들이 줄줄이 취소를 한 것이었습니다. 국경이 막히고 비행편이 취소되면서, 여름까지 꽉 차있던 봉사자들이 모두 올 수 없게 되었지요. 오랜만에 그냥 둘이서만 하루 14~15시간씩 일하던 시절로 되돌아 가보자 하는 각오를 하고, 실제로 그렇게 며칠을 버텼습니다.
‘이거 너무 힘든데’ 할 즈음에 봉사 희망자들로부터 하나 둘씩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요. 한국에 몇 달 전부터 들어와 여행하다가 역시 국경이 막히면서 돌아가지 못하고 본의 아니게 ‘코로나 난민’ 신세가 되어 갇혀 있던 외국인 친구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지요.
덕분에 백화골 농장도 여느 때처럼 여러 국적의 봉사자 친구들이 북적이는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생활 방역으로 전환되면서 국내 봉사자들도 슬슬 주말 봉사를 와주기 시작했고요. 꾸러미 발송하는 날이면 여럿이 새벽부터 수확과 포장 작업을 하느라 시끌벅적 정신이 없답니다.
지난 4주 동안 꾸러미를 받은 회원분들께서 여러가지 반응을 보여주셨는데요, 그 중 몇 가지만 소개합니다.
「태어나서 삼잎국화나물 처음 먹어보는데 정말 맛있네요! 간장 양념으로 무쳐 먹었어요. 행복해서 문자 보내봅니다~」
「한주 일찍 도착한다는 소식에 괜실히 가슴이 두근두근, 선물을 기다리는 마음이었어요. 코로나로 농산물꾸러미를 검색하다 알게된 백화골과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될지 궁금했거든요. 매번 요리하기 편하고 쉬운 것들로 사먹던 것이 아닌, 새로운 채소와 새로운 레시피 덕분에 주말 저희의 식탁이 다채로워졌답니다. 시레기나물 무침도 처음으로 해보고, 열무는 비빔밥으로 해서 맛있게 먹었어요. 특히 박하꽃과 잎은... 첫 꾸러미안에 숨겨진 보물같았네요. 꽃잎하나 조심히 다루어 차로 마셨습니다. 어제 부모님을 초대해 식사를 하며 후식으로도 내드렸는데 소중한 자리를 빛내준 것 같았어요.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아요. 다음주에는 또 어떤 채소들을 받게 될지... 기다려집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주 보내주신 청경채와 상추, 케일과 치커리 등등을 넣고 시원한 물김치를 만들었는데 비가 와서 춥네요. ㅠㅠ 이 비가 농사짓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백화고 채소 잘 받았습니다. 생소한 채소들도 있는데, 안내문 보내주셔서 요리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지난 주 쌈배추로 겉절이 달달∼하게 잘 먹었는데, 오늘 얼갈이 배추 받고 반가운 마음입니다. 더운 날씨에 수고가 많으십니다. 잘 먹을게요~」
「안녕하세요. 채소 잘 받고 있습니다. 야채 좋아하는 가족인데, 다양한 채소가 오니 안 먹어보던 것도 먹고 좋네요. 초등 6학년 딸래미는 사장님 같은 농부가 되고 싶다고 하구요. ^^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소감과 의견 보내주신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맛있게 드셔주시는 회원분들 덕분에 백화골 농부들은 앞으로도 더욱 힘내서 농사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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