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만 해도 ‘농부의 하루’를 써서 업데이트하려고 생각했는데, 막상 농사철이 시작되고 나니 어느새 ‘농부의 한 달’ 꼴로 글을 올리고 있네요. 백화골에 찾아오는 봉사자들의 농사 일기를 올리는 일도 늘 바쁘다 보니 늦어졌습니다. 농사 일 마치고 저녁에 책상에 앉아 뭔가를 하는 일은 늘 힘든 것 같아요. 오랜만에 글 올리다보니 변명이 길어졌네요.
올해 여름은 7월까지는 날씨가 그리 덥지 않아 버틸 만 했었는데, 8월에 찾아온 늦더위에 많이 지쳤습니다. 그리고 8월 말부터 지금까지 계속 흐린 날과 비 오는 날이 잦아 가을 작물들이 생각보다 쑥쑥 자라지 못하네요. 며칠 전에는 태풍까지 지나가는 바람에 가을 작물로 심어 놓은 쌈채소와 옥수수 등이 많이 죽었습니다. 태풍 한방으로 쓸려 내려간 모습에 조금 우울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많은 작물들을 보며 감사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작년까지는 퇴비 자루 같은 곳에 흙을 담아서 우엉을 재배했습니다. 땅에 곧바로 심으면 수확할 때 정말 힘들거든요. 올해는 캘 때 아예 미니 포크레인을 빌리기서 마음먹고 자루가 아닌 땅에 심어봤는데, 우엉이 정말 크게 잘 되었습니다. 봉사자들이 많이 와서 우엉을 캤습니다. 요리해 먹어도 좋고, 차로 만들어 먹어도 좋네요.
추석 때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공부하고 있는 태국, 말레이시아, 터키, 베트남 학생들과 독일 봉사자와 함께 일하고 나들이도 했습니다. 명절 음식 만들어 먹는다고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기도 했지요. 마침 날씨가 좋아서 보름달 구경도 실컷 했습니다.
가을 배추는 유기농으로 키우기 참 어려운 작물입니다. 5~6년 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방제가 잘 됐었는데, 기후 변화 때문인지 새로운 해충들이 달려들어서 긴장하고 방제하지 않으면 아예 수확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일단 벌레들이 못 들어오게 방충망을 둘러치고 10일 간격으로 유기농 자재로 방제하며 열심히 키우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온 19살 봉사자 카타리나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농부가 되고 싶어서 여러 농장을 여행 중이라고 합니다. 저렇게 어린 나이에 힘든 육체노동도 마다 않고 농사일과 보람과 재미를 가져주는 것이 참 고마웠습니다.
태풍 지나가고 나니 다시 높고 푸른 하늘입니다. 요즘 유기농사 짓는 사람들은 기후변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날씨 때문에 농사짓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유기농사 자체가 기후 변화를 막는 환경운동이기도 합니다. 유기농에서는 화학농약이나 화학비료 등의 화석연료(석유 제품 등)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온실가스 발생을 억제하여 환경을 보호합니다. 땅 한 평이라도 유기농으로 농사짓는 것이 땅과 물과 공기를 깨끗하게 할 뿐만 아니라 먼 안목으로는 기후 변화를 막는 길이기도 한 셈입니다. 거창하게 구호만 외치기보다는 깨끗한 지구를 위해 작은 실천을 하는 것이 더 좋아 보입니다.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 가급적 비닐 사용을 자제하는 것, 고기를 덜 먹는 것, 화장지 사용을 줄이는 것, 유기농사를 짓고 소비하는 것.... 이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서 지구를 지키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깊어지는 가을, 백화골 농부들도 더 힘내서 열심히 농사지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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