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농부의 하루
봄의 문을 두드리며 ‘백화골 농부의 하루’를 시작합니다
- ‘2019년 2월 12일’ 한 해 농사 시작, 모종 온실 만들기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백화골 농부들은 2018년 한 해를 안식년으로 잘 보내고 이제 2019년 농사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이제 15년차 유기농 농부가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 나이로 35살에 귀농을 해서 이제 50살이 되었네요. 농사지으며 행복하게 지내다 보니 시간이 바람처럼 흘러갔습니다. 올해부터는 ‘농부의 하루’를 시간 나는 대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았지만 귀농해서 15년을 농촌에서 계속 살고 있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귀농하려는 분들과 저희 경험을 공유하고 싶기도 하고, 저희 농산물을 드시는 제철꾸러미 회원분들께 저희가 어떻게 농사짓는지, 어떻게 농산물이 자라는지 보여드리고 싶기도 합니다.
그럼 2019년 첫 백화골 농부의 하루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가 터전을 옮긴 새 백화골은 경주 인근의 산골 마을입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울주군이지만,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경주였고, 경주 생활권인 지역입니다. 깊은 산 속에 있어서 택배 배송도 안 해주는(^^) 물 맑고 공기 깨끗한 곳입니다. 남쪽 지방이라 이전에 살던 장수보다는 겨울 온도가 4도 정도 높네요. 겨울치고는 많이 따뜻하지만 영하의 날씨 속에 일을 하니 냉장고 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입니다. 그래도 다시 농사일을 시작하니 신나고 즐겁습니다.
올해 첫 농사일은 모종 키울 따뜻한 공간을 만드는 일입니다. 작년에는 이사 때문에 정신이 없어 임시방편으로 비닐 터널을 만들고 모종을 키웠거든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제철꾸러미 농사를 짓기도 하고 해서 튼튼한 모종 온실이 필요합니다. 유기농에서는 씨앗을 넣는 파종부터 유기농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모종을 직접 키워야 합니다. 시중에서 파는 모종은 어린 시절부터 화학비료와 화학농약을 사용하기 때문에 사용할 수가 없답니다.
모종 온실을 지을 터가 완전 황무지 같습니다. 잡목과 풀 더미가 쌓여 있어서 정리를 시작합니다. 삽을 들고 진입로부터 확보합니다.
영하의 기온이지만 터 정리를 하다 보니 땀이 흐릅니다. 잡목과 칡뿌리를 정리하고 배수로를 파고 평탄 작업을 했습니다.
돌이 참 많습니다. 돌을 캐서 정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네요. 올해 백화골 첫 봉사자인 이희재님과 같이 돌을 골라냈습니다. 이희재님은 작년부터 주말마다 백화골에 찾아와 일손을 도와주고 계신 분인데 올봄에는 아예 한동안 머물며 첫 시작부터 농사일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타일 전문가인 희재님은 유기농이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라는 데 공감하며 농사일도 돕고 유기농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힘이 넘치는 든든한 도우미 덕분에 울퉁불퉁한 돌밭이 금세 평지가 되었습니다.
겨우내 잘 익은 백화골 동미치로 국수를 만들었습니다. 일하다 먹으니 정말 맛있네요. 저희는 맑고 담백한 음식을 좋아해서 단순하게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 손으로 직접 키운 무와 고추, 갓, 대파에 물 붓고 소금만 조금 넣었을 뿐인데 겨우내 참 맛있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발효의 세계는 언제 봐도 참 신기합니다.
겨울 여행에서 돌아와 먹는 김장 김치는 언제나 맛있지만, 이번 김치는 유독 맛있습니다. 작년 말에 많은 분들이 함께 만든 김치거든요. 이 김치를 만들던 작년 11월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농사일을 하다 사다리에서 떨어져 갈비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한 달 넘게 누워만 있었습니다. 농사 정리를 해야 하고 배추와 무도 수확해야 하고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의사가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한참 난감해 하고 있는데 소식을 듣고 관련 단체 분들 등 많은 봉사자들이 찾아와서 배추와 무도 수확해 주시고 김장도 도와주셨습니다. 제가 집에 누워있는 동안 아내가 많은 봉사자분들과 함께 뒷정리도 잘하고 김장도 하고, 밭에 낙엽과 부엽토까지 뿌려놓고 뒷정리를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우리가 농사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유기농 농부로 더 노력해서 이분들께 좋은 농산물을 보내드려야겠다는 다짐도 했습니다.
누워 있는 내내 일하고 싶었습니다. 마음껏 움직이며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부러웠습니다. 이제 다시 찾아온 농사철, 몸이 나아져서 마음껏 삽질하고 곡괭이질하고 돌 나르고 하니 정말 즐겁습니다. 농사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축복이고 행복입니다. 올 한 해 또 신명나게 농사일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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