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맵고 사나웠던 이번 겨울, 잘들 지내셨는지요? 저희 백화골 농부들은 작년 마지막 꾸러미 안내글에서 말씀드렸던 대로, 필리핀 민다나오에 있는 구호단체 JTS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돌아왔습니다. 한국 겨울이 유난히 춥다는 것은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만 보았지요.

JTS에서는 소외된 지역인 민다나오 오지 마을 곳곳에 학교 짓는 일을 주로 하는데요, 아이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서 영양불균형이 심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학교 텃밭에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어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채소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희 역할이었습니다. 선생님들에게 농사 기술을 알려드리고 함께 실습도 하면서 겨울을 보냈습니다.
민다나오에서의 농사 봉사활동은 생각보다 어렵기도 했고, 생각보다 재미있기도 했어요. 학교 텃밭을 살피기 위해 민다나오 곳곳에 있는 산속 오지마을 학교들을 찾아다니며 험난한 길에 놀라기도 했고, 그런 어려운 조건에서도 밝은 얼굴로 일하고 있는 필리핀 선생님들과 한국 자원활동가들이 존경스럽기도 했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민다나오의 두 달을 보내면서 앞날에 대한 저희 계획도 조금 바뀌었어요. 보잘 것 없는 기술이긴 하지만 그래도 저희가 그동안 쌓아온 유기농 농사 기술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참 즐거웠거든요. 앞으로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런 경험을 나누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지난 13년 동안 이어온 백화골 유기농제철꾸러미를 올해는 잠시 쉬어가기로 하겠습니다. 꾸러미를 쉬는 1년 동안 백화골이 새롭게 나아갈 길을 열심히 모색하려고 해요. 그 길이 어떤 모습일지 지금으로선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유기농 농사에서 크게 벗어나는 모습은 아닐 것 같아요. 단,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꾸러미를 쉬는 한 해이기 때문에 ‘안식년’이라는 말을 붙이긴 했지만, 백화골 농부들에게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도 변화가 많은 도전의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민다나오 생활이 저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렇게 즐거이 도전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 해 동안 백화골 유기농꾸러미를 함께 해주신 가족 같은 단골 회원분들께는 참 죄송한 마음입니다. 올해 신규 회원으로 가입하려고 기다리고 계셨던 분들께도 죄송하고요. 지금까지 저희에게 보내주셨던 소중한 응원의 마음들을 발판삼아, 기지개 한 번 쭈욱 크게 켜고 달라진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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