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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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2년

베트남 쌀국수

백화골 2012. 9. 18. 12:40

 

며칠동안 주변 농민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산바가 지나갔습니다.

볼라벤 때 하도 크게 당했던 터라 새로 씌워놓은 십여 동 하우스 비닐을 모조리 다시 벗겨놓은 사람도 있었고, 아직 채 익지 않은 사과를 눈물을 머금고 미리 다 따놓는 등 다들 무리수를 써가며 태풍 대비를 했답니다. 저희는 일이 예정보다 많이 늦어지는 바람에 하우스 비닐을 새로 씌워놓기 전이라 오히려 담담한 마음으로 태풍맞이를 할 수 있었지요.

 

전북지역은 이틀 동안 하염없이 쏟아진 비를 제외하면 이번엔 별다른 피해 없이 지나갔습니다. 아침 뉴스를 보니 남해와 경상도 지역은 피해가 꽤 큰 모양이네요. 예전같으면 ‘다행히 큰 피해 없이 태풍이 지나갔다’고 했을 테지만, 태풍이 방향 각도를 조금 꺾는 바람에 우리 대신 피해를 입은 다른 지역 사람들과 농민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다행’이라는 말은 나오지가 않네요. 지금쯤 또 얼마나 많은 농민들이 망연자실 주저앉아 있을런지...

 

계속되는 폭우와 태풍 등으로 복구작업은 더디기만 하고, 가족회원 발송은 이르면 추석 전 주부터 재개할 생각이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여의치가 않아 추석 이후로 연기해놓은 상황입이랍니다. 피해 보상이니 재해 농가 지원이니 하는 것은 완전히 남의 나라 얘기로, 우리 지역에선 아무런 말도 없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팔목에 무리까지 가는 바람에 일하는 틈틈이 침맞으러 다니면서 ‘파스 투혼’ 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태풍이 휩쓸고 다녀도 사람 사는 곳에 소소한 즐거움은 있기 마련이지요. 오늘은 태풍 소식과 복구작업 얘기 말고 맛있는 쌀국수 한그릇 올리려고 합니다.

 

 

계북에서 토마토 농사 짓는 용진이형네 형수님한테 점심 초대를 받았습니다. 베트남에서 시집온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분이라 한글도 잘 읽고 한국말로 못하는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요리 솜씨도 일품이라고 소문이 난 터라 몇 달 전부터 쌀국수 한 번 먹여달라고 졸라댔더니 이렇게 날잡고 초대해주신 것입니다.

 

 

요리는 토마토 하우스 옆에 붙어있는 간이 부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오전 내내 토마토 따고 선별하는 작업 끝내자마자 바로 점심 준비 하시는 형수님 보니 좀 미안하긴 했지만, 너무 좋아하는 베트남 쌀국수 맛볼 생각에 기대 만빵~

 

 

베트남 쌀국수는 닭고기와 닭뼈로 육수를 냅니다. 여기에 볶은 돼지고기 고명과 갖은 야채까지 들어가니 우리나라 국수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가는 편이지요. 가스레인지 위에서 맑갛게 우려낸 닭 육수가 보글보글 끓고 있네요. 베트남 형수님 말에 따르면 북베트남 사람들은 요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쌀국수에 ‘미원’을 갖다붓는데 반해, 남베트남 사람들은 육수 낼 때 절대 ‘미원’을 쓰지 않는다나요. 물론 형수님은 남베트남 출신이십니다. ^^

 

 

언제 준비하셨는지 야무지게 말아놓은 월남쌈도 상 위에 올라가 있네요. 이젠 우리나라 사람들도 월남쌈을 꽤 즐겨 먹게 된 터라 조금 큰 슈퍼마켓에만 가도 월남쌈용 피를 쉽게 구할 수 있답니다. 베트남 채소들 대신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야채인 부추를 말아넣으셨네요.

 

베트남에서 직접 공수된 소스도 빠질 수가 없지요. 베트남 말로는 ‘느억맘’이라고 하고, 영어로는 ‘피쉬 소스’라고 하는데, 베트남 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소스입니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멸치액젓’ 정도? 물론 한국의 멸치 액젓과는 맛이 많이 다릅니다. 느억맘은 인원수대로 작은 종지에 따라놓고 월남쌈을 찍어 먹습니다. 한국 사람 입맛에도 잘 맞아요~

 

 

삶은 쌀국수를 그릇에 담고 육수를 붓기 전 여러 가지 고명을 올려 놓고 있는 중입니다. 당근과 쪽파, 생 숙주에 볶은 돼지고기와 게맛살, 메추리알 등을 넣으셨네요.

 

 

짜잔~ 드디어 소박하고도 화려한 장수식 베트남 점심 밥상이 완성되었습니다. 맛이 어땠는지는 묻지 말아주세요. 도저히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의 맛! ^^ 도시에 있는 비싼 베트남 쌀국수집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있었다는 것은 확실하고요.

 

다음날 다가온다는 태풍 소식도 잊을 만큼 참 멋진 점심시간이었어요.  용진이형네도 볼라벤 때 토마토 연동 하우스 비닐이 다 찢어지고 날아가는 바람에 큰 피해를 입었는데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점심 초대까지 해주신 여유와 웃음 덕분에 모처럼 즐거운 점심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내년엔 토마토 대박 맞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