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전국을 싹쓸이하고 간 뒤 벌써 1주일이 지나갔네요. 지금 백화골에선 파손된 하우스 복구 작업과 가족회원 농산물 재발송을 위한 농사 준비 두 가지를 함께 병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답니다. 생각처럼 일이 착착 진행되진 않고 있지만, 그래도 해볼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려고 해요. 시간은 촉박한데 할 일은 너무 어마어마해서 기운이 빠질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회원분들의 격려와 고마운 도움의 손길들 덕분에 힘을 내서 일하고 있답니다.
태풍이 지나가고 다시 화창한 날 아침. 부서진 하우스 잔해를 보고 있지나 마음도 답답하고 어디서부터 일을 시작해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옆 마을로 이사와 유기농 농사짓는 수용이네가 찾아와 훨훨 날아다니며 정리 작업을 도와주었습니다. 의기소침해 있던 마음에 얼마나 큰 힘이 되었던지... 덕분에 흉한 몰골로 여기저기 처박혀 있던 파이프들이 하루만에 가지런히 정리되었습니다. 한전 직원 분들도 얼른 찾아와서 쓰러진 전신주를 세워주셨습니다.
보관되어 있던 씨앗들이 다 쏟아져 나왔네요. 일을 시작하기 전, 어떤 밭에 무엇을 심을 것인지 계획부터 세웠습니다. 지금 심어서 올해 안에 수확할 가능성이 있는 것들은 일단 모두 심으려고 합니다.
볼라벤 뒤를 따라온 태풍 덴빈이 하루종일 장대비를 뿌리던 날, 모종 하우스 안에서 계속 씨 넣는 일을 했습니다. 과연 이 씨앗들을 제대로 심고 거두어 발송까지 할 수 있게 될지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또 한편으론 ‘희망의 씨앗’이라는 말을 제대로 느끼면서요.
너덜너덜해진 하우스 비닐을 다 걷어내자 또 하루가 지나갑니다.
노지밭의 날아간 멀칭 비닐을 호미로 긁어서 다시 씌우고 죽은 브로콜리와 양배추 자리에는 배추 모종을 새로 심었습니다. 오후 무렵엔 태풍 피해 소식을 듣고 먼길을 달려온 고맙고 반가운 친구들이 도착해 같이 일했습니다. 게중엔 거의 10년 만에 얼굴 보는 이도 있었지요. 태풍이 와서 다 나쁘기만 한 건 아니구나 싶었어요. 이렇게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게도 만들어주니 말이에요. 다음날엔 전에 살던 마을 이웃도 찾아와 밭일을 도와주었고요. 이 고마운 손길들 정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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