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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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2년

태풍 피해 복구 2주차

백화골 2012. 9. 7. 23:07

 

화요일에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태풍으로 지반이 약해진 상태에서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지난 주말에 애써 심은 작물들이 조금 떠내려갔습니다. 열심히 피해복구를 하려는데 또 폭우가 내려버리니 힘이 빠지더군요. 밭에 물이 가득 차버려서 하우스 다시 세우는 작업도 더디게 진행됐습니다.

 

 

땅이 마르고 다시 복구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미니 포크레인을 농기계임대센터에서 빌려와서 태풍과 폭우로 쓸린 밭 배수로를 정비했습니다.

 

 

다음날엔 구부러진 하우스 파이프를 펴는 밴딩기를 빌려왔습니다. 하루 임대료는 1만원입니다. 마을 어르신 한 분이 태풍 때 자기 하우스도 폭삭 가라앉았다고 도움을 요청하셔서 우리밭 일을 하기 전에 잠시 동안 하우스 파이프 펴는 일을 해드렸습니다. 시골 어르신들 특징 중 하나가 아무리 조그만 일 하나를 해드리더라도 절대 공짜로 받는 일이 없다는 점입니다. 극구 사양했는데도 우리집 일을 도와주시겠다며 오셨습니다.

 

 

그래서 84세 되신 마을 어르신과 주변에 귀농해 사는 후배 두 명, 저희 둘 이렇게 다섯명이서 찌그러진 하우스 해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여럿이서 일하니 진도가 팍팍 나갑니다. 나사를 풀고, 땅 속에 박힌 하우스대를 뽑고, 아까운 토마토도 어쩔 수 없이 뽑아서 정리하고 하니 금방 오전 시간이 지나갑니다.

 

 

80대 노인분이 어찌나 힘도 좋고 일하는 요령도 좋으시던지요. 하우스 파이프를 번쩍 번쩍 들어 옮기고, 말씀을 드리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척척 어느새 다음 일을 하고 계십니다. 역시 연륜이란 속일 수 없는 것인가 봅니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 피해 복구 작업이 더딥니다. 주변에 있는 농민들도 다 비슷비슷한 피해를 당한 터라 마땅히 부를 사람이 없고, 도시에 있는 친구나 친지들, 가족회원분들은 대부분 주말에나 오실 수 있는데 그것도 시간 내서 오시기 힘든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긴 했지만, 오늘 할 일은 남자 넷 이상이 있어야 하는 일. 하우스 파이프를 펴고, 다시 틀에 끼워넣어 동그랗게 구부린 다음 땅에 꽂아넣는 일입니다. 고민고민 해가며 사돈에 팔촌까지 올 수 있을 만한 사람들에게 모두 연락을 해 보았지만 사람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반갑게도 대민지원 요청을 해놓았던 국민연금관리공단 남원지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며칠은 못 도와드리지만 남자 네 분이 하루 오셔서 사회공헌활동, 대민지원을 나오시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장수 지역 국민연금 관련 업무는 남원지사 담당인데, 지역 내에서 자연재해 등으로 어려움이 생기면 이런 식으로 종종 봉사활동을 나온다고 하네요. 사실 대민지원은 처음 받는 일이라 어떤 분들이 오셔서 어떻게 일을 하실지 잘 상상이 가질 않았습니다.

 

약속한 날 오전에 정말 남원지사 지사장님과 직원분 세 분이 함께 오셨습니다. 다들 농촌 출신들이시라 그런지 금방 일에 적응해서 진짜 농민들처럼 일을 잘하십니다. 밴딩기에 구부러진 하우스 파이프를 넣고 펴는 일은 나름 어렵고 위험한 일인데 금세 일이 정리가 됩니다. 하우스 파이프가 쭉쭉 펴지면서 저희 마음도 조금씩 펴지는 듯 합니다.

 

 

쫙 편 하우스 파이프를 다시 틀에 놓고 구부렸습니다. 이 작업도 서로 간에 호흡이 맞지 않으면 어려운 일인데, “하나, 둘, 셋!”을 연신 힘차게 외쳐가며 척척 호흡을 맞춰주셨습니다.

 

 

농사일 하다 보면 참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면서 내린 결론은, 누가 일을 잘하고 못하고보다는 일을 대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겠다는 마음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 새록새록 새 기운이 솟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오늘 대민지원 오신 분들은 태풍 피해 농가를 힘껏 도와주겠다는 진심어린 마음씀이 느껴져 정말 고마웠습니다. 마치 등 뒤에 날개가 달려있는 것 같았어요.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TV 화면이나 신문 같은 데서 공무원들이 대민 봉사활동 하는 사진을 보면 왠지 연출된 장면 같고, 그냥 가서 일하는 시늉 좀 하다가 사진만 찍고 오는 거 아냐? 하는 생각도 들곤 했었는데, 그런 생각 했던 게 정말 미안해졌습니다. 역시나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가지는 섣부른 선입관처럼 어리석은 생각도 없는 것 같습니다.

 

 

날아갔던 하우스 파이프가 다시 땅 속에 박혔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 답답했었는데, 이렇게 또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첫 단추가 꿰어지게 되었습니다.

 

 

옆 마을에 사는 계북면 농민회장님과 통화를 하다보니 마침 우리집에 이어서 바로 내일과 모레 밴딩기를 예약해놓으셨다네요. 그래서 농기계임대센터에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고 바로 전달해드렸습니다. 회장님은 저희보다 더 큰 피해를 입으셨어요. 하우스 세 동이 다 통째로 날아가고, 막 수확을 앞둔 인삼밭은 쑥대밭이 되고, 사과나무가 낙과가 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수십 그루가 쓰러져서 죽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저희한테 “힘내! 나같은 사람도 있는데, 뭘.” 하면서 싱긋 웃어주시네요.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어 저희도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정말 얼른 얼른 피해 복구 하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번 태풍 피해를 본 후 저희가 다짐한 일이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 중에서 자연재해를 당하거나 안 좋은 일을 당한 분이 있으면 지체 없이 달려가 도와드려야겠다는 겁니다. 이럴 때 오셔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정말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어려울 때 한 마디 격려의 말도 그렇구요.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돕고 사는 세상, 이번 태풍으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고 공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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