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지독한 봄가뭄입니다. 요새 농사짓는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혀를 끌끌 차지요. 그래도 지난 주엔 오랜만에 비다운 비가 한 번 시원하게 와주었어요. 시들시들 하던 작물들이 이 비 한 번 맞고서 다시 기운을 차렸답니다. 작물들보다는 풀들이 먼저 비냄새 맡고 쑥 올라오긴 했지만요. ^^
지난 주에 보내드렸던 열무와 청경채예요. 열무는 좀 맵고 뻣뻣한 편이었지요? 그 맛이 바로 ‘봄가뭄의 맛’이랍니다. 호스를 연결해 몇 번 물을 주긴 했지만, 워낙 메마른 날들만 계속되다 보니 턱도 없더라고요. 키도 안 크고 뻣뻣하게 자랐어요. 방제도 평소보다 몇 배나 더 많이 해주긴 했는데, 식물의 성장세 자체가 더디다보니 벌레 구멍이 송송송 많이도 뚫려버렸네요. 그래도 저흰 워낙 힘들게 키운 것이라 그런지 마구 애정이 가더군요. 송송 썰어서 고추장 한 숟갈과 함께 맛있는 열무 비빔밥 해먹었답니다.
지난 주엔 발송 작업 틈틈이 고구마를 심고 콩도 심었어요. 고구마는 심는 건 별로 어렵지가 않은데, 심고 나서 며칠 동안 아침저녁으로 물주는 것이 큰일이랍니다. 물주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공들여 심은 고구마순이 다 말라 죽어버리거든요. 줄기에서 뿌리가 생겨 뻗어내려갈 때까지 끊임없이 물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이럴 수가! 예쁘게 포기를 채워가던 로메인 상추가 불쌍하게도 고라니 밥이 되고 말았어요. 아삭아삭한 로메인 상추로 맛있는 성찬을 벌이고 갔네요. 밭 둘레에 고라니망을 쳐 놓긴 했는데, 좀 낮은 부분이 있어서 그곳을 뛰어 넘어 들어왔나 봅니다. 당장 고라니망 보강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한 번 맛을 보고 갔으니 그냥 방치해두면 계속 들어와 먹어댈 테니까요.
길이가 긴 고추막대를 사다가 하나씩 더 둘러가며 박아놓고 고라니가 뛰어넘을 수 없을 만한 높이까지 망을 치켜 올렸습니다. 이걸로는 불안해서 깜박이 등도 사다가 드문드문 달아놓았지요.
낮동안 태양광을 축적해 놓았다가 밤이 되면 저절로 불이 깜박깜박 들어오는 등이라고 하네요. 좀 비싸긴 하지만 건전지도 필요없고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는 말에 몇 개 사서 달아두었습니다. 어두워질수록 깜박이는 빛의 세기도 더욱 강렬하게 느껴지네요.
줄맞춰 자라고 있는 예쁜 우리 밭 작물들이랍니다. 흐뭇하게 잘 자라주고 있네요.
양상추예요. 이번 주부터 조금씩 차기 시작해 일단 푸른밥상 회원들부터 보내드리기 시작했어요. 봄 양상추는 속을 너무 꽉꽉 채우는 것보다는 이렇게 살짝 덜 찬 듯 할 때 수확해 먹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이번 주에 보내드리고 있는 브로콜리와 컬리플라워가 사이좋게 포즈를 취하고 있네요. 언뜻 보면 둘이 색깔만 다르고 똑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꽃송이 형태도 다르고 잎의 모양과 색깔도 다르답니다. 요리를 해서 드셔보시면 맛도 다르다는 걸 아시게 될 거에요. ^^
애호박과 오이는 이만큼 자랐어요. 아마 다다음주 정도부터는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이건 또 뭘까요? 바로 보리예요. 수확하기 위해 심은 건 아니고요, 새로 개간한 비탈진 길이 비에 떠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 겨울에 사방팔방 마구 뿌려놓았던 녹비용 보리 씨가 이렇게 밭을 이루며 잘 자랐답니다. 집과 하우스를 왔다갔다 하는 길이 자연스레 ‘보리밭 사잇길’이 되고 말았어요. 뉘 부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온갖 새소리와 개구리 소리만 천지에 가득합니다. ^^
그래도 돌아보면 저녁놀 빈 하늘은 눈에 가득 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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