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물을 좋아해
요즘 하루는 물 주기로 시작해 물 주기로 끝나고 있습니다. 농사 지으며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식물들은 정말 물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간혹 군자란이나 다육 식물 같은 예외도 있긴 하지만, 우리 밭에서 자라는 채소들은 하나같이 다 물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특히 발아기나 어린 유묘기 때는 물을 정말 자주 자주 챙겨서 줘야 하지요.
1주일 넘게 비가 안 오고 있어요. 열흘 전 쯤에 왔던 비도 충분히 쏟아진 비가 아니라 찔끔 오고 만 비였기 때문에 노지 작물들이 요즘 목말라 하고 있답니다. 여기에 때 이른 여름 더위까지 겹쳐 땅에선 흙먼지만 폴폴 날립니다.
처음엔 물조리개로 물을 주기 시작하다가 다음날엔 긴 호스에 물 분사기를 끼워서 물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엔 아예 삼발이 스프링클러를 사다가 꽂아두고 저절로 물이 나오게 장치해 놓았답니다.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칙칙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보니 속이 다 시원하네요. 며칠 동안 ‘물관리’에 신경 쓴 보람이 있었나봅니다. 새가 와서 파먹기 전에 다행히 옥수수도 싹이 골고루 나주었고, 땅콩도 막 땅을 뚫고 나오려 하는 중입니다.
#삐딱진 밭
이곳 사람들은 경사지고 비탈진 밭을 ‘삐딱진 밭’이라고 부릅니다. 자꾸 듣다보니 금방 귀에 익어 우리도 자연스레 “아이구, 삐딱진 밭에서 일하기 정말 힘드네!” 이렇게 말하게 되었답니다.
사방이 온통 삐딱진 밭들 뿐입니다. 어렸을 때 교과서에 나왔던 ‘우리 국토는 70%가 산’이라는 말이 아주 제대로 실감이 납니다. 그래도 전에 살던 곳에선 평평하게 개간된 밭들만 했었는데, 이곳에선 하우스 빼고는 모든 밭들이 다 엄청난 경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딱진 밭에서 일하려니 일이 두 배로 더 힘이 듭니다. 퇴비 끌고 가서 푸는 것도 몇 배로 힘이 들고, 트랙터질, 관리기질도 어렵습니다. 골 탈 땐 관리기가 자꾸 미끄러지는 통에 아예 관리기 한쪽에 줄을 매달아 한 사람이 위에서 계속 잡아당겨가며 골을 탔습니다. 비닐 멀칭도 흙이 자꾸 미끄러져 내려가 어렵고, 모종 심을 때 일하는 자세도 엉거주춤하고...
한 가지 좋은 점은 폐활량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밭에 한 번 갈 때마다 헥헥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는데, 이런 급경사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 숨차는 정도가 처음보다 많이 덜해졌습니다. 이 기세를 몰아 아예 올해 면별 체육대회 땐 마라톤 선수로 한 번 나가볼까 생각 중입니다. (^^)
#지진
냉장고에 넣어뒀던 떡을 점심 반찬으로 먹으려고 후라이팬에 굽고 있는데, 갑자기 지하철 지나갈 때 같은 약한 흔들림이 느껴지더니 ‘쿵!!’ 밭 밑으로 강력한 진동이 느껴졌습니다. 깜짝 놀라 “이게 뭐야? 지진 났나? 미사일이라도 떨어진 거 아냐?” 라고 말은 했지만 설마 정말 지진이 난 줄은 몰랐습니다. 한 번의 강력한 ‘쿵’이 지나가고 난 뒤에는 다시 고요하기만 했으니까요.
나중에 인터넷 속보를 보니 그 시간에 무주에서 지진이 발생했었다는군요. 무주에서 발생한 지진을 장수에서 그렇게 강력하게 느낄 정도라니... 지진이라는 게 정말 무섭긴 무서운 것인가 봅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지진이라는 걸 내 몸으로 체험한 날이었습니다.
#변명
“농산물 발송은 언제부터인가요?” “블로그 글이 업데이트가 안 되네요?”
회원분들 궁금하게 만들고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변명을 하자면... 다들 짐작하고 계실 이유겠지만 요즘 너무 바빴습니다! ㅠㅠ
요즘 얼마나 바쁜가 하면요, 농부 업무수칙 제 1호인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일한다’도 어기면서 일하고 있답니다. 헤드랜턴을 쓰고 9시 넘어서까지 일하다 집에 들어와 대충 허기 채우고 씻고 그대로 쓰러져서 잔 날도 많았어요. 농사 짓는 게 늘 이렇게 바쁜 건 아니고요, 5월만 지나가면 그래도 좀 숨통이 트일 텐데 아무튼 요즘은 매일매일 눈 뜨는 그 순간부터 해야 할 일들이 여기저기 둥둥 떠다니며 “나 잡아봐라~”를 외치는 것 같은 나날들이랍니다.
농산물 발송은 다음 주부터입니다. 화요일 회원은 5월 15일, 목요일 회원은 5월 17일, 토요일 회원은 5월 19일에 올해 첫 농산물 택배를 받으시게 될 거예요. 다들 오래 기다리셨지요? 아직 수확할 만큼 다 자란 것들이 많지 않아 첫 발송 품목은 주로 산나물 류가 차지하게 될 것 같아요. 엊그제는 포장 작업실도 깨끗이 정리하고, 박스도 종류별로 내다놓고, 부족한 포장재들도 체크해서 주문해놓는 일을 마쳤답니다. 그러고보니 이제 첫 발송 디데이가 3일 앞으로 다가왔네요. 두근두근...
발송 전날 다시 한 번 회원분들께 확인 문자 보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