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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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2년

감자 심고 배수로 파기

백화골 2012. 3. 21. 22:53

오후가 되면서 날씨가 풀리네요. 이제 봄 다운 봄이 시작되려나 봅니다. 추운 겨울 동안 고생 고생 하우스 짓고 땅 만들며 열심히 일한 터전 위에 올해 첫 작물 감자를 심었습니다. 감개무량입니다.

미니 포크레인으로 땅을 뒤집고 돌 한번 더 고르고 땅을 다듬어 놓았습니다. 감자를 심으려고 관기리로 두둑을 만드는 데 땅이 굉장히 생각보다 부드럽고 좋습니다. 땅 속에 유기물도 제법 그득합니다. 두둑을 만들고 미리 썰어서 나무재에 버무려놓은 씨감자를 심었습니다. 파종기로 심고 복토 하는 일이 오랜만이어서인지 좀 힘들긴 했지만, 다 심고나니 참 좋습니다. 감자를 심었으니 이제 백화골의 2012년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입니다.

개간하고 처음 땅 만들 때면 돌을 골라야 합니다. 캐도캐도 계속 나오는 돌들. 몇 달 동안 계속 골라낸 돌들이 쌓여가면서 아예 돌탑이 되려고 합니다. 지난 번 마을에서도 돌 캐느라 힘들었는데... 가끔씩 ‘내가 농부인가 광부인가’ 정체성에 혼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돌을 캡니다.

감자 심은 하우스 옆에 배수로를 팠습니다. 배수로 팔 자리가 마침 돌들이 집중적으로 모여있는 곳이라 계속 곡괭이질을 해가며 어렵게 어렵게 파나갔습니다. 하루종일 곡괭이와 삽을 휘둘러도 진도는 좀처럼 나가지 않고, 힘은 떨어지고... 이럴 땐 막걸리 한 잔 마셔야 합니다. 나른한 봄날 오후, 막걸리 한 잔 마시고 나니 마술처럼 다시 힘이 솟아납니다.  

오후 4시를 넘어가면서 날씨가 다시 쌀쌀해집니다. 잠시 배수로 파는 일을 중단하고 모종 덮어주러 올라갑니다. 열흘 전 쯤 씨를 넣어둔 양상추, 배추, 브로콜리, 양배추가 이만큼 자랐습니다. 농사 짓는 철이 다 그렇지만, 특히 모종 키우는 동안에는 어디 멀리 나가는 건 꿈도 못 꾸는 꼼짝없는 매인 몸 신세가 됩니다. 아침 저녁으로 모종 이불 벗겼다 덮었다 하며 온도 조절해줘야 하고, 물은 미리 받아서 따뜻하게 해놓았다가 늦은 아침이나 한낮에 줍니다. 햇볕이 강한 날엔 하우스 문을 살짝 열어 환기를 해주고, 한낮이라도 바람이 많이 불거나 흐린 날에는 이중터널 비닐까지 덮어줘야 합니다. 어렸을 때 지극정성으로 알뜰살뜰 돌봐주어야 나중에 강하게 건강하게 자라나는 건 아이들이나 채소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모종 온도를 맞춰주고 다시 배수로 파러 내려오는데, 밭 옆에 이웃해 있는 낙엽송 숲이 넘어가는 저녁 햇살을 받으며 반짝입니다. 지금도 아름답지만, 저 가지에 파릇파릇 새순이 돋기 시작하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상상만으로도 흐뭇해집니다. 꽃 피고 새순 돋는 4월 풍경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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