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녹기 시작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습니다. 겨울 동안엔 일하고 싶어도 모든 것이 다 꽝꽝 얼어붙어 있어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는데, 이젠 눈 대신 비가 내리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갑자기 정신 못차릴 정도로 모든 일이 바쁘게 돌아갑니다.
겨우내 뼈대를 박아놓았던 하우스에 드디어 비닐을 씌웠습니다. 비닐 씌울 땐 여러 가지 노하우가 필요한데,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날씨입니다. 바람 불 때 잘못 비닐 씌우다가는 비닐이 통째로 날아가버리거나 몇 십 만원이나 하는 비싼 하우스 비닐이 찢어져버리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비닐 씌우는 작업은 보통 바람이 가장 적게 부는 시간대인 이른 새벽에 여러 사람이 붙어서 빠른 시간 안에 끝내곤 하지요.
저희도 비닐 씌우는 날 주변 농사 친구들 몇몇에게 지원 요청을 해두었습니다. 고맙게도 모두들 동이 채 트기 전부터 일찌감치 와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 갑자기 대기가 심상찮게 변하더니 새벽부터 강풍이 불기 시작합니다. 오늘 그냥 일을 접어야 되나, 사람들은 불러놨는데... 심란해하고 있는데 사과 농사짓는 친구인 은진이가 자신있게 “GO!”를 외칩니다. 은진이는 자타가 공인하는 하우스 전문가! 게다가 힘 좋은 우리 마을 이웃 성환이, 유기농 하우스 농사를 오래 지어온 옆 마을 수용이까지 합세하니 겁날게 없습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 때마다 위기를 맞긴 했지만, 경험 많은 농부 넷이 붙어서 손발을 맞추니 두 시간 만에 마술처럼 하우스 네 동의 비닐이 모두 씌워졌습니다. 어휴, 이렇게 해서 또 한 고비 넘었습니다~ 도와준 친구들이 얼마나 고맙던지요.
대충 비닐을 씌워놓은 하우스 뒷마무리 작업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앞 뒷문 깔끔하게 고정시키고, 치마비닐 둘러서 파묻고, 자동개폐기 설치하고, 고리 걸어서 단단히 줄 매놓고... 이 일들이 다 끝나면 이제 배수로 완비와 관수시설 설치를 해야 합니다. 하우스 봄감자를 얼른 심어야 하는데, 일이 마음대로 빠르게 진행되지가 않네요. 게다가 이번 봄비에 무너져 내린 개간지 둔덕 부분도 손봐야 하고, 모종 키울 온상도 얼른 마련해야 하고, 퇴비도 풀어놔야 하고... 바쁜 마음 다독여가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 바쁜 와중에 또 한 가지 일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사는 장수 계북면에 대규모로 환경을 파괴하는 개발이 시작되려고 해서 이를 반대하는 주민 투쟁 때문에 요즘 또 정신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마을에 직접적인 피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웃 마을의 일인 데다 그 마을 주민들이 대부분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라 함께 나서줄 젊은 사람들이 꼭 필요한 상황입니다. 덕분에 낮에는 밭에서 일하느라 바쁘고, 밤에는 이런저런 서류 만들고 회의하느라 바쁩니다. 조용한 산골마을에서 살고 있지만 하루도 한가한 날 없네요. 그래도 이렇게 분주히 사는 것이 싫지는 않습니다. 여기저기 쓰일 곳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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