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입니다. 시골에선 대보름이 아주 큰 행사입니다. 마을마다 남정네들이 모여 달집에 쓸 나무 하느라 바쁩니다. 여자들은 음식 준비를 하고요. 나무를 할 만한 여력이 안 되는 마을에선 행사를 그냥 생략하기도 하지요. 우리 마을에서도 몇 해 동안 대보름 행사를 하지 않고 넘어갔다고 하네요. 올해 대보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며칠 전부터 어르신들끼리 의논들 하시더니, 젊은 사람도 새로 들어왔고 하니 하자고 결론을 내셨습니다. “나무는 저희가 해놓을게요” 했는데, 어느 틈에 어르신들 몇 분이서 싹 해놓으셨더군요. 젊은 사람들 다른 일 하느라 바쁠 텐데 신경 쓰지 말라고, 그냥 달집 태울 때 참석만 해주어도 고마운 일이라고 말씀하시네요. 이렇게 황송할 데가...
이른 저녁 무렵 회관에 내려가니 벌써 막걸리와 머릿고기가 차려져 있습니다. 저녁 먹고, 왁자지껄 윷놀이 한 번 놀고 나니 어둑어둑해집니다. “자, 이제 슬슬 나가보자고!” 어르신들이 마루 한귀퉁이에서 먼지 쌓인 악기들을 챙기기 시작합니다.
회관 근처에 있는 논바닥에다 머릿고기 한접시와 막걸리 한사발로 조촐하게 대보름상을 차렸습니다. 다행히 낮부터 내리던 보슬비도 그치고 날씨도 근래 들어 가장 포근합니다.
흐린 날씨 때문에 비록 달은 안 보였지만, 마을의 최고 연장자인 어르신께서 나와 달집에 불을 놓습니다
붓글씨 잘 쓰시는 마을 어른이 직접 쓰신 대보름 소원지를 훨훨 타오르는 달집에 태워 올렸습니다. “매자마을 만사형통하고, 어르신들 백세건강하시길~”
달집에 붙은 불이 하늘에 닿을 듯이 힘차게 타오릅니다. 달집에 불이 잘 붙고 잘 타야 그 해 농사가 잘 된다는 속설이 있답니다. 올해 농사는 대풍 예감이네요!
아이들도 신이 나서 뛰어다니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단체 사진도 찍었습니다. “아이고야, 이제 좀 사람 사는 마을같네.” 젊은 사람이 들어온 덕에 몇 해 동안 하지 못했던 대보름 놀이도 하고 이제 좀 사람 사는 마을 같아졌다며 좋아들 하십니다. 서로에 대한 감사의 마음 하나만으로도 작지만 풍성한 대보름 행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