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쯤 되었을까요. 아직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무렵이었는데, 사무실이 양재동에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또는 저녁 먹고 야근하기 전 동료들과 사무실 주변을 한 바퀴씩 돌며 산책하곤 했습니다. 양재천 주변 산책로를 걷다가 사무실 뒷길 쪽으로 좀 멀리 걸어가다 보면 의외의 풍경과 만나곤 했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고물들과 리어카를 끌고다니는 할머니들. 높다랗게 철판으로 가림막이 되어 있어 안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없었지만, 코앞에 타워팰리스가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는 강남 한복판에 고물상이라니, 뜻밖이다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나서 10여 년이 흐른 며칠 전, 뉴스에서 바로 그 ‘뜻밖의 동네’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포이동 266번지. 96가구 주민들이 판자촌을 형성하고 근근이 살아가던 이 마을에 큰 불이 나 마을 전체가 거의 잿더미가 되다시피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니, 포이동 266번지(현재 정식 행정 지명은 개포4동 1266번지)에 대한 여러 가지 사실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원래 이곳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쓰레기 하치장이었는데, 1979년 박정희 시대에 정부가 강제로 넝마주이와 도시 빈민들을 ‘자활근로대’라는 이름으로 이주시킨 것이 이 마을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강제 이주시켜놓고 군대식 관리와 고문 구타 등 온갖 인권 탄압을 일삼던 곳. 세월이 흘러 세상이 ‘민주화’되면서 포이동 주민들은 ‘시유지 무단 점유자’라는 새로운 딱지를 달게 됩니다. 그리고 함께 부과된 어마어마한 액수의 토지 변상금. 고물을 주으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이들에게 부과된 토지 변상금은 한 가구당 적게는 5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 7천만원 정도 된다고 하네요.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족쇄처럼 따라다니는 이 어처구니 없는 토지변상금 때문에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서울시와 강남구청을 상대로 끈질긴 싸움을 벌여온 지 몇 년째. 그러다 그만 지난 6월 12일, 어린 아이의 작은 불장난이 다닥다닥 붙은 판자촌 전체에 삽시간에 퍼져 나가면서 96가구 중 75가구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고 만 것입니다.
어떻게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인터넷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다가 마침 진보신당 홈페이지에서 ‘농산물 후원을 바랍니다’라는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현재 200명 정도의 주민들이 불에 타지 않고 남은 마을회관에서 숙식을 함께 하고 있는데, 당장 식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농산물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 두 사람 힘으로는 부족하겠지만 장수 지역 농민들이 힘을 모으면 그래도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크게 보탬은 안 되더라도 적어도 포이동 이웃들의 아픔을 함께 안타까워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키운 농산물이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일주일 동안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농산물 모으는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포이동 화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상황 설명을 하니 몇 마디 듣지도 않고 모두들 선뜻 피땀으로 키운 농산물들을 내놓습니다. 딱히 나오는 농산물들이 적은 장마철이라 양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나도 뭔가 돕고 싶다’는 진심 만큼은 철철 넘치도록 풍성했습니다.
처음에는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농민 당원들을 중심으로 농산물 수집을 했는데, 나중에는 소식을 들은 주변 농민들이 자진해서 농산물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내일 서울 올라간다면서? 쌀 한 가마니 있는데 갖고 갈려?” 하면서 말이에요. 농사를 짓지 않는 마을 이웃 한 명은 돈 봉투를 쥐어주며 전해달랍니다. 고맙다고 하자 “이런 일에 끼워줘서 내가 더 고마워.” 합니다.
쌀, 토마토, 상추, 당근, 대파, 소고기, 양파, 밀가루, 양상추, 버섯, 감자, 생강가루, 호박, 유정란, 시금치, 사과즙, 배즙, 배 등이 모였습니다.
월요일 낮에 영농조합 트럭을 빌려서 수집한 농산물들을 싣고 장수를 출발, 포이동에 도착하니 저녁 때가 다 되었습니다. 어수선한 천막 거처. 주민들이 몸둘 바를 모를 정도로 따뜻하게 환영을 해줍니다. 화재의 충격이 컸지만, 여기저기서 따뜻한 손길들이 많아 지금은 그래도 표정들이 많이 밝아졌다고 합니다. 화재 현장은 듣던대로 처참합니다. 아직 다 치우지도 못하고 겨우 사람 다닐 길 정도만 내놓은 상태라고 하네요. 천막 밑 임시 부엌에는 커다란 솥단지가 걸려있습니다.
이곳에서 하루 세 끼 준비하려면 정말 힘들겠다 싶습니다. 잠은 마을회관 2층 방에선 아이들이 자고, 1층에선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주무신다고 합니다. 비바람에 노출되어 한데나 다름없는 임시 천막에선 아저씨들이 주무신다고 하네요. 열악한 환경이지만 그래도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천막촌에선 활기와 희망이 넘쳤습니다. 지난 30년 세월 동안 어려운 고비마다 서로 의지하며 끌어주며 살아온 포이동 사람들의 힘, 그 힘을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포이동 싸움은 이제 시작입니다. 서울시에서 내놓은 대책은 ‘임대 주택으로 분산 이주’라고 합니다. 토지변상금 문제는 언급도 없고요.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포이동 주민들은 화재가 난 그 자리에 주거 복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포이동 266번지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포이동 주민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함께 할 수 있다고 하네요.
*지지방문 및 화재 잔해 치우기, 주거 복구 작업 참여 : 문의 010-2731-2676
*후원 계좌 : 국민은행 767401-01-276083 조철순(포이동주거복구후원모금)
*후원 물품 보낼 수 있는 주소 : 서울시 강남구 개포4동 1266번지 마을회관(문의 010-6208-2393)
장수와 포이동 사람들의 마음이 따뜻하게 이어진 날. 덕분에 저희 마음도 아주 따뜻해졌답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세상엔 참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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