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바쁜 나날들입니다. 하루도 빼지않고 12시간 이상씩 일하는 하루 하루가 이어집니다. 몸에 피로는 쌓여가지만, 올해 농사가 비교적 잘 되어서 힘이 납니다. 더구나 오랫동안 기다리던 친구들이 드디어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아주 반가운 손님들입니다.
첫 손님은 바로 벌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벌은 아주 흔했습니다. 저희가 사는 동네는 주변에 농약 치는 밭이 없고 산 바로 밑이라 벌이 아주 많았죠. 그런데 작년 가을부턴가 이상 기후로 저희 마을까지 벌이 귀한 손님이 되어버렸습니다. 벌이 없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왔던 터라 좀 불안한 맘이 들긴 했지만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공기 좋은 산 밑에 설마 벌이 안 나타날까. 지난주까지도 진짜 벌이 안 왔습니다. 애호박이 아주 잘 자랐는데 수정이 안 돼서 그냥 똑 떨어져버리고 말았죠. 며칠 전부터 갑자기 벌이 나타나더니 윙윙거리고 날아다닙니다. 반가운 손님입니다. 게다가 애호박 숫꽃도 피었습니다. 애호박은 초기에 암초현상이 심합니다. 암꽃만 잔뜩 피고 숫꽃이 늦게 피어서 수정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정벌에 숫꽃까지 함께 찾아온 터라 본격적인 애호박 수확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호박, 오이, 양배추, 브로콜리, 고추 등 어지간한 작물에 가장 많이 찾아도는 벌레가 바로 진딧물입니다. 진딧물 친환경 방제는 쉽지 않습니다. 제충국으로 반든 유기농 기피제가 있긴 하지만 말 그대로 미리미리 방제해서 기피하는 것이지 진딧물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무당벌레를 이용해 방제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무당벌레 한 마리가 하루에 진딧물을 약 500마리 정도 먹어치운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당벌레 찾아오는 시기가 좀 늦다는 게 문제입니다.
지난 겨울이 추워서였는지 평년보다 2주 정도 늦게 찾아왔네요. 왼쪽이 무당벌레 유충이고 오른쪽이 다 큰 놈입니다. 지금까지 유기농 기피제를 1주일에 한 번 정도씩 치면서 무당벌레가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이제 그냥 놔두어도 됩니다. 무당벌레가 며칠 안에 밭에 있는 진딧물을 싹 청소해줄 겁니다.
완두콩, 비트, 당근, 미니 쌈배추 모두 잘 자랍니다. 밭에서 풀을 뽑다가 바라보면 흡족한 마음이 듭니다. 이렇게 모든 작물이 다 잘자라는 걸 보니 좋습니다.
본격적으로 풀 메는 시기입니다. 유기농사라는 게 사실 풀 잡기가 반입니다. 친환경 농사 하다가 포기하는 건 대부분 풀을 못 잡아서입니다. 골과 골 사이에 깔려 있는 부직포가 아니였다면 저희도 농사짓기 참 힘들었을 것 같아요. 부직포는 헝겊인데 땅도 숨을 쉴 수 있고 풀도 잡으니 참 좋은 유기농 도우미입니다. 하지만 부직포를 깔아도 풀은 납니다. 작물 바로 밑에, 부직포 사이에... 그래서 요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풀 뽑으며 지냅니다.
노지 감자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올해 농사 시작할 때도 저희에게는 땅이 부족했습니다. 저희가 사는 동네에는 땅이 많지 않아서 해마다 농사지을 땅을 찾느라 힘이 듭니다. 임대할 밭은 많으나 주변에 농약치는 밭 없는 곳을 찾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죠. 이런 이유로 저희가 아예 다른 동네로 이사가는 것이구요. 올해는 특히 임대할 땅 구하기가 어려워 포기하고 있었는데, 마을 구석 자리에 풀로 뒤덮힌 채 방치된 밭을 빌릴 수 있었습니다.
집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곳이라 발길이 자주 가게 되질 않네요. 문전옥답이라고 집에서 먼 땅일수록 농사가 잘 안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감자꽃밭을 만들고 말았네요. 감자는 꽃을 빨리 따줘야 속이 잘 차는데 조금 늦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감자꽃이 활짝 핀 우리밭은 처음보는 일이라 사진도 찍어가며 감상하고 난 뒤에 꽃을 따주었습니다.
해마다 6월이면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 오디입니다. 마당에 자생하기 시작한 뽕 나무가 크게 자라서 오디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시골 와서 오디를 처음 맛보았는데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열매 같습니다. 회원분들께 오디를 그대로 보내드리면 참 좋을텐데, 배송할 방법이 없어서 매년 잼으로 만들어 보내드리고 있답니다. 이번 주말엔 오디잼 만드느라 바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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