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쨍쨍하고 화창한 날들입니다. 1년 내내 5~6월 날씨만 같다면 아마 농사꾼들 훨훨 날아다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파나 폭염도 없고, 장마도 폭우도 없는 세상. 회원분들에게 보내드리는 발송 품목에서 이제 산나물 들나물은 완전히 빠지고 풍요로운 밭 작물들이 슬슬 인사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올봄 브로콜리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예년에 비하면 그래도 조금은 넉넉하게 브로콜리를 보내드릴 수 있게 되어 신이 납니다. 브로콜리는 한 포기에 하나씩밖에 수확을 하지 못합니다. 곁순을 키워서 2~3개씩 수확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처음에 수확하는 것에 비하면 크기도 작고 상품성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저희는 한 개를 수확하고 나면 미련없이 다 뿌리채 뽑아내 버린답니다.
이렇게 브로콜리를 수확하고 난 뒤에 나오는 풍성한 잎들은 주로 이웃이 키우는 닭과 염소의 맛있는 특식 메뉴가 됩니다. 사람들은 입에만 달면 몸에 안 좋은 음식들을 더 좋아하는 경우가 많지만, 동물들은 자기 몸에 좋은 먹이를 가장 좋아하고 잘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계장 이웃분의 말씀에 따르면, 닭들에게 배추 한 통을 주면 시퍼런 겉잎만 좋아라 달려들어서 먹고, 하얀 속잎 부분은 잘 먹지 않는다고 해요. 야들야들한 속잎만 좋아하는 사람과는 반대이지요. 아무튼 이렇게 나름 까다로운 입맛을 갖고있는 닭과 염소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가 바로 브로콜리 잎이라고 해요.
이번 주엔 햇감자를 캐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얼마나 알이 들었나 보려고 시험 삼아 캐본 것에 알감자들만 조롱조롱 매달려있길래 올해 감자 농사 망했구나, 하고 실망하고 있었는데 막상 캐보니 어느 해보다도 감자 농사가 잘 됐습니다. 햇빛 잘못 봐서 파란 빛 도는 흠감자도 거의 없고, 알들이 큼직큼직한 것이 아주 흐뭇합니다. 흰 감자는 흰 감자대로, 자주 감자는 자주 감자대로 선별하고, 조림용 알감자는 흰 것과 빨간 것을 섞어서 담았습니다. 자주 감자, 알감자도 앞으로 차례차례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상추가 제대로 물이 올랐습니다. 좀 추웠던 탓인지 5월에 잘 자라지 못하던 놈들이 6월로 접어들면서 갑자기 쑥쑥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6월 한 달 동안은 쌈채소를 아주 넉넉히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줄지어 열린 오이들입니다. 첫물이라 아직 많이 보내드리고 있지는 못하지만, 다음주부터는 마구 쏟아져 나올 것 같습니다. 일정한 양이 몇 주 동안 좀 꾸준히 나와주면 좋으련만, 오이들은 짧은 시기에 확 몰려서 쏟아져 나오곤 합니다. 그래서 회원분들에게 보내드리는 양 맞추기가 좀 어렵습니다. 월요일에 발송 작업 할 때만 해도 20개가 넘을까 말까 나오던 놈들이 금요일에 작업할 땐 100개 이상 열려있곤 하니까요. 2~3주 이렇게 정신없이 쏟아져 나오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뚝 끊겨버립니다. 아무튼 종잡을 수 없는 놈들입니다.
이번 주에 보내드리고 있는 봄무입니다. 가늘고 긴 모양의 품종이에요. 제철인 가을무에 비하면 맛은 많이 떨어지는 편이지요. 그래도 너무 구박하지 마시고 북어국 끓일 때, 생선 조림 할 때 알차게 사용해주시길 부탁드려요. ^^ 원래는 무청을 자르지 않고 무에 같이 붙여서 보내드릴 계획이었는데, 보시다시피 구멍이 너무 숭숭 뚫리고 작은 벌레들이 많이 붙어 있어서 그냥 무만 보내드리기로 했습니다. 잘라낸 무청은 일단 처마 밑에 나란히 걸어놓긴 했는데, 뜨겁고 습한 여름 날씨에 예쁘게 잘 마를지는 모르겠습니다.
마을 길가에 왠 꽃 한 송이가 갑자기 피었습니다. 자태와 빛깔이 심상치 않아 보이지요? 잡초로 우거진 길가에서 이런 귀족적인 자태를 뽐내는 꽃 한 송이가 왠일인가 싶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이 꽃이 바로 양귀비랍니다. 야생 양귀비. 도대체 어디서 씨가 날아와 딱 한 송이 이렇게 피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참 예쁜 꽃입니다. 중국 역사 속 최고 미녀의 이름이 괜히 양귀비가 아니로군요.
자, 마지막으로 백화골 늬우스 한 가지 더 전할게요. 오랫동안 노력한 끝에(땅 사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 몰랐어요. 흑흑~) 저희 백화골의 새로운 터전이 될 땅을 구입했습니다. 곧 집 짓기를 시작하여 올해 이곳에 집을 짓고, 땅 만들기를 하고, 내년부터는 이곳에서 모든 농사를 지을 계획이랍니다.
지금 저희가 사는 곳은 장수군 계남면, 그리고 새로 이사갈 곳은 장수군 계북면이에요. 지금 저희가 사는 곳 못지 않게 고라니와 꿩이 활개를 칠 것 같은 깊은 산 밑 땅이랍니다. 이모저모로 올해는 참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그래도 이제 안정적으로 농사지을 수 있는 넉넉한 터전이 생겼다는 점이 기분 좋습니다. 백화골 기쁜 소식 축하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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