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형님네 집에 오랜만에 얼굴도 뵙고, 겨우내 어떻게 지내셨는지 안부도 물을 겸 찾아갔습니다(장수에 와서 농사짓는 ‘형님’들이 아주 많이 생겼습니다. 모두가 친형님처럼 아주 든든한 분들이지요).
농사도 짓고 소도 많이 키우시는 분인데, 얼굴을 보는 순간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겨울 동안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며칠 포근하게 풀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두 뺨이 동상 걸린 사람처럼 빨갛게 부어있습니다. 매일 소 밥 주고, 물 갈아 넣고, 축사 소독하고, 백신 맞히고 하느라 그 혹독한 겨울 동안 계속 바깥에서 살았던 탓입니다.
물주는 게 특히 힘들었다고 합니다. 물그릇에 물을 채우자마자 꽁꽁 얼어버려 하루에도 물주는 일을 몇 번씩이나 반복했다네요. 다행히 장수에는 구제역이 퍼지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어떻게 될까 불안하여 바깥에도 못 나가고, 외지 사람 안으로도 안 들이고, 그렇게 겨울 내내 무인도처럼 지내셨다고 합니다.
축사하시는 분들, 방역하시는 분들... 올 겨울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무엇보다 인간의 기준에 의해 한순간에 몰살당한 그 수많은 짐승들은 또 어떡하고요.
형님네 축사를 찾아간 날 새벽 마침 송아지 한 마리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겨우내 고생했던 형님은 송아지 받느라 또 새벽잠을 설쳤지만, 순산한 어미 소와 건강하게 태어난 송아지 덕분에 기분이 퍽 좋아 보입니다. 태어난 지 아직 채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송아지인데 꽤 의젓하고 튼실해 보이지요? 주인과 함께 있어서인지 낯선 사람이 사진기를 갖다 대도 어미 소는 그저 순한 눈길로 껌뻑껌뻑 쳐다보고 있을 뿐이네요.
새봄의 기운을 받으며 태어난 이 송아지에게 지난 겨울처럼 잔인한 계절이 다시 찾아오는 일은 절대로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얼어 터진 형님 얼굴도 훈훈한 봄바람 맞고 보드라운 진달래처럼 환하게 피어나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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