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핸드폰 알람 소리가 들립니다. 어제 사과밭에서 늦게까지 일하다 와서 그런지 몸이 무겁습니다. 힘들어도 오늘은 농산물가족회원 발송하는 날입니다. 게으름을 부릴 틈이 없습니다. 얼른 일어나 아침을 먹고 작업장으로 갑니다.
저희가 포장 작업을 하는 곳입니다. 손님이 많이 오면 별채로 쓸 때도 있지만, 평상시엔 주로 농산물 포장 작업을 합니다. 직사광선이 비치면 채소가 상할까봐 남쪽으로는 아예 창문을 내지 않았습니다. 좀 컴컴하지만 한낮까지 시원합니다.
어제 밤에 미리 박스 만들기를 해놓아서 출발이 한결 수월합니다.
어제 저녁에는 친구네 과수원에 가서 배를 따 왔습니다. 몇 년째 사과 과수원 하는 친구와 재미난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과수원 한귀퉁이에 몇 그루 심어놓은 배나무에서 가족회원들에게 보낼 배를 따오고, 대신 우리는 며칠 나가서 사과밭 일을 도와줍니다.
요즘 한창 사과밭 일이 바쁠 때라 일손 구하기가 어려워, 돈을 받고 배를 파는 것보다는 일손 거들어주러 오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합니다. 우리 역시 저농약으로 재배한 맛있고 신선한 배도 얻고, 일손 바쁜 곳에 조금이나마 도움도 될 수 있으니 일거양득입니다. 높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해서 좀 힘들긴 하지만요.
갓 따온 배를 포장합니다. 생긴 건 좀 못생겼어도 맛은 좋습니다. 요즘 비가 많이 와서 당도가 작년보다는 못하지만 아삭아삭하고 신선합니다. 배송 도중 깨지지 않도록 뽁뽁이로 잘 싸서 박스에 넣었습니다.
이제 양파를 포장합니다. 올해는 전반적으로 양파 농사가 잘 안 되었다고 합니다. 저희한테 양파를 몇 년째 공급해주는 윤제네 양파도 냉해 때문에 농사가 잘 안 되어 크기가 좀 작습니다. 지난주까지는 그래도 조금 큰 양파가 갔는데, 이번 주부터는 아주 작은 미니 양파가 갑니다. 대신 가격도 낮췄습니다.
하우스에 물 주러 올라가는 길입니다. 저희는 하우스가 세 동입니다. 편의상 1,2,3번 하우스라고 부릅니다. 1번 하우스에는 지금 브로콜리, 컬리플라워, 배추, 고추가 심어져 있고, 2번 하우스에는 토마토가 심어져 있습니다. 3번 하우스에는 애호박, 오이, 쌈채소, 양배추, 양상추, 대파가 있습니다.
대기가 흐려지더니 또 비가 내립니다. 몇 주 째 계속 비가 내리다 보니, 이제는 비 내리는 날이 익숙한 일상처럼 느껴집니다.
브로콜리, 컬리플라워, 배추가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도 하우스 안에는 물을 줘야 합니다. 농민들은 새로 심은 작물이 활착해 뿌리내리기 시작하면 “땅 냄새를 맡았다”고 합니다. 요놈들이 이제 슬슬 땅 냄새를 맡기 시작했습니다. 며칠만 잘 관리하면 쑥쑥 커나갈 것입니다.
1번 하우스 물을 틀어놓고 3번 하우스에 오이와 애호박을 따러갑니다. 올라가보니 2차 오이가 다 죽어 있습니다. 때가 되기는 했지만 왠지 서글픈 마음이 듭니다.
얼마 전에 심은 3차 오이가 기세 좋게 올라옵니다. 죽은 2차 오이를 보다 이놈들을 보니 생명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요놈들이 자랄 때까지 당분간 오이 발송이 중단됩니다. 워낙에 오이는 빨리 자라는 편이기 때문에 조만간 다시 발송이 시작될 겁니다. 4차 오이는 이제 막 싹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저희가 보내드리는 대파입니다. 아담하게 생긴 것이 시중에서 파는 대파와는 좀 다르지요? 대파 농사를 지어보니 대파에도 참 약들 많이 치겠구나 싶습니다. 왜 이렇게 벌레들이 꼬이는지... 게다가 마트에서 파는 것 같은 ‘슈퍼 대파’로 키우려면 화학비료도 듬뿍듬뿍 줘야 할 것 같아요.
추석 전후부터 수확할 쌈채소들입니다. 요즘 쌈채소 값이 많이 비싸다던데, 얼른 키워서 보내드렸으면 좋겠습니다.
2번 하우스로 내려와서 토마토와 방울 토마토를 수확합니다. 방울토마토 따는 일은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해야 합니다. 토마토를 따서 뾰족 튀어나온 꼭지를 가위로 일일이 잘라주어야 하는데(그래야 배송 도중 꼭지에 서로 찔려서 터지는 일이 없습니다), 빨리 하려고 서두르다보면 손을 다칠 수도 있고 조급한 마음에 더 일이 안 됩니다. 수행하듯 하나씩 하나씩 꼭지를 잘라 바구니에 담습니다.
가지도 따서 상자에 넣었습니다. 이맘때가 가지 맛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지난주엔 가지 말리기를 시도했는데, 비가 계속 내리는 바람에 곰팡이가 많이 폈습니다. 비가 그치고 해가 쨍쨍 뜨는 가을이 시작되면 다시 가지 말리기를 시도할 계획입니다.
풋고추가 아직도 많이 나옵니다. 미처 못 딴 놈은 빨갛게 익어갑니다. 빨간 고추 역시 그냥 먹어도 맛있습니다.
피망도 계속 잘 자랍니다. 빨간 피망은 유독 단 맛이 납니다. 하지만 벌레를 많이 타는 놈이라 채 익기 전에 구멍이 뽕뽕 뚫려버리고 맙니다.
저희는 농산물을 주로 중앙일보 신문지로 포장합니다. 물론 저희가 구독하는 신문은 아닙니다. 구독은커녕 포장하다가 가끔씩이라도 기사 내용을 보게 되면 막 화가 날 때가 많기 때문에 정신 건강을 위해 최대한 신문 내용은 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시골에선 헌 신문지도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도시에 계시는 부모님이 신문을 모아놓았다가 주시곤 하는데, 어떤 신문이냐를 떠나서 재활용 포장지로 이용할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므로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오곤 합니다.
12시30분, 점심을 먹습니다. 어제 친구네 밭에서 한 개 따온 사과와 방금 딴 토마토와 피망과 가지를 반찬으로 밥을 먹습니다. 갓 수확한 채소들은 언제 먹어도 참 맛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강낭콩을 수확합니다. 수요일, 금요일에도 모자라지 않게 발송을 해야 하므로 저울을 가지고 가서 딱 오늘 필요한 만큼만 땁니다. 강낭콩은 올해 처음 심어본 놈인데 간장이랑 물엿 넣고 푹 조려서 먹어보니 맛이 좋습니다.
노지밭에 당근을 심었는데 계속 쏟아진 비로 망했습니다. 다들 이렇게 되어 버렸네요. 나름대로 열심히 씨 넣고 풀 뽑고 물주고 퇴비 넣어가며 키웠는데... 해마다 짓는 것인데도 당근 농사는 아직까지 어렵기만 하네요.
강낭콩을 포장하는 중입니다. 생각보다 벌레가 많이 안 먹고 잘 커서 기분이 좋습니다.
하나둘씩 포장이 마무리 되어 갑니다.
지난 몇 주간 밤마다 열심히 간장 끓여가며 담근 고추 장아찌입니다. 간장이 새지 않도록 밀봉 포장을 했습니다. 이번 주엔 푸른밥상 회원에겐 된장, 작은 회원에겐 고추 장아찌가 갑니다. ‘나도 그거 받고 싶은데...’ 하고 서운해 하지 마세요. 조만간 교대로 바꾸어서 보내드릴 테니까요. 푸른밥상 회원에겐 장아찌가, 작은 회원에겐 된장이...
저녁 6시 10분. 포장 작업이 끝나고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택배 기사님이 올라오셨습니다. 사고 없이 무사히 발송되길 바라며 화요일 회원분들이 받으실 17번째 주 농산물 상자들을 택배차에 실어 보냅니다. 오늘 발송 작업은 이것으로 끝!
해질 때까지 포트에 씨 넣는 일을 합니다. 얼마 전에 가족회원 한 분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철분이 많이 든 아기 이유식 재료를 찾고 있는데 혹시 ‘비타민’이라는 쌈채소는 안 키우느냐고요. 비타민(‘다채’라고도 부르는 쌈채소입니다)이라면 귀농 첫 해에 한 번 심어봤다가 벌레가 하도 달려드는 바람에 다시 쳐다보지 않았던 놈인데, 아기 이유식 재료로 찾을 만큼 철분이 많다니 올가을에 한 번 다시 도전해보렵니다. 그동안 그래도 농사 기술이 좀 늘었으니 이번엔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질녁이 되니 모기들이 죽자사자 달려듭니다. 할 수 없이 모기향을 피워놓고 일을 합니다. 곧 해가 져서 깜깜해집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 잘하고, 밥 잘 먹고, 농산물 발송 무사히 잘 끝냈으니 오늘도 참 감사하고 행복한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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