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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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제철꾸러미/2006년~2010년

여름 쌈채소와 풋고추

백화골 2010. 7. 15. 14:07

비가 내리다가 흐려지고, 해가 반짝 떴다가 또 폭우가 쏟아지고… 하루에도 수도 없이 날씨가 뒤바뀌는 날들입니다. 이렇게 습한 날들이 이어지면 잎곰팡이병, 흰가루병 등이 기세를 부립니다. 열심히 방제를 하지만 유기농으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습니다. 몇 년간 농사를 지어보니 유기농의 비결은 ‘손해를 감수하는 것'인 듯 싶어요. 욕심을 버리고 어느 정도 손해날 것을 예상하고 농사지으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여름이 되면 쌈채소가 잘 안 자랍니다. 비가 자주 오니 일조량이 떨어져서 못 자라고, 더위에 약한 놈들이라 해가 쨍 하고 뜨면 또 더워서 못 큽니다. 그래서 여름 쌈채소는 주로 장수 같은 고랭지에서 주로 재배하는데, 고랭지라도 봄가을처럼 잘 자라는 건 아닙니다. 해마다 이맘 때면 쌈채소가 부족해 고생을 한지라 올해는 심는 면적을 늘렸습니다. 발송 도중 상하지 말라고 잎이 두꺼운 로메인 상추, 청경채, 겨자채, 엔다이브 등을 선택했구요.

청경채입니다. 중국 요리에 많이 쓰이는 것이죠. 배추 맛 비슷한데, 생으로 먹어도 좋고 중국 요리에서처럼 익혀 먹는 것도 괜찮습니다. 벌레들도 청경채를 아주 좋아합니다.

살짝 매운 맛이 나는 겨자채입니다. 요놈도 벌레들이 좋아해서 구멍이 숭숭 뚫려 있습니다. 청경채 옆에 심어놓고 함께 관리하고 있습니다.

잎이 두꺼워 잘 무르지 않는 로메인 상추입니다. 지중해 지역이 원산지라는데, 양상추와 비슷한 싱그러운 향이 일품입니다. 잎이 아삭아삭해 샐러드로 만들어 먹기가 특히 좋습니다.

샐러드볼이에요. 서양에선 샐러드를 담을 때 기본적으로 이 채소를 접시 바닥에 깔고 담는 경우가 많아 ‘샐러드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네요. 부드럽고 맛있기는 한데, 햇볕에 좀 약해서 수확량이 많지 않습니다.

대형 백화점에 전문적으로 쌈채소를 납품하는 주변 농민이 몇 주 나눠준 꽃상추를 심어보았어요. 네델란드에서 씨앗을 사가지고 오셨다고 하네요. 빛깔이 예쁘고 향이 좋은데 이놈도 너무 강한 햇볕에는 적응을 못하네요.

고추가 제철입니다. 일반 농민들을 보면 ‘고추는 농약 없이는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이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친환경 인증 심사관들도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더라구요. 

저희가 농사지어보니 절대 안 되는 것은 아니고 수확량이 관행농에 비해 많이 적을 뿐입니다. 각종 병도 많이 오고 벌레도 들끓어요. 특히 요즘엔 환경오염으로 산성비와 함께 각종 오염물질들이 쏟아져서인지 비를 맞으면 고추에 병이 도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친환경으로 농사짓는 분들은 산성비를 피하는 비가림 하우스에서 주로 고추 농사를 짓습니다.

올해 유독 고추가 잘 자라네요. 작년 겨울에 밭에다 왕겨와 옥수수대 썰어 넣어 준 게 힘을 발휘하는 것 같아요. 뽕뽕이 벌레와 흰가루병, 탄저병이 오지 않도록 고삼뿌리와 제충국, 계란껍질 칼슘, 현미식초, 유용 미생물 등을 뿌려가며 방제하고 있습니다.

고추는 우리 고유의 채소가 아니라 임진왜란 때 들어온 것이랍니다. 사실 역사가 얼마 안 된 작물이지요.

요즘에는 풋고추도 품종이 많아졌습니다. 예전에는 고춧가루용으로 키우는 고추에서 풋고추를 따 먹거나 맵지 않은 풋고추용 녹광 고추 정도밖에 없었는데, 몇 년 새 풋고추 시장의 대세가 오이맛 고추, 아삭이 고추로 옮겨가고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엔 기능성 고추라고 해서 어떤 어떤 병에 좋다며 새로운 고추 품종들이 나오는데, ‘기능성’이라는 말엔 왠지 거부감이 듭니다. 밭에서 나는 채소에까지 기능을 따지고 효율을 따져가며 먹어야 되나 하는 느낌입니다. 신선한 야채들을 골고루 편식하지 않고 먹는 것이 면역력을 높이는 데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정 작물만 먹는다고 병이 낫거나 하진 않을 것 같아요.

사진에서 제일 왼쪽은 ‘모닝’이라는 품종의 맵지 않은 고춧가루용 고추에요. 풋고추로도 맛있지요. 두 번째 뭉툭하게 생긴 놈이 아삭이 고추. 진녹색에 땅딸막한 게 생긴 모습은 아주 매울 것 같지만, 그다지 맵지 않고 이름처럼 아삭아삭합니다. 세 번째가 맵지 않고 껍질이 얇은 풋고추 전용 녹광 고추구요. 마지막 것이 바로 요즘 인기가 치솟는 오이맛 고추입니다. 맛도 오이맛이지만 크기도 거의 작은 오이만큼이나 거대하게 자랍니다. 저희는 골고루 드시라고 여러 고추들을 다 섞어서 보냅니다.

토마토가 예상보다 1주일 빨리 익기 시작했습니다. 예전 영농일지를 보고 빠르면 7월20일부터 수확할 거라고 예상하고 관리를 해 왔는데 갑자기 빨간 기운이 밭 여기저기를 물들이기 시작했어요. 하나 따서 먹어보니 전체적인 맛은 좋은데 아직 당도가 오르지 않았더군요. 바닷물을 많이 치고 당도 내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제일 중요한 것은 햇볕이거든요. 최근에 장마라 일조량이 떨어지다보니 당도도 같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장마 끝나고 해가 쨍쨍 뜨면 토마토도 금방 당도가 올라갈 거예요.

열매가 너무 많이 달려 있는 경우에는 적절한 갯수만 남기고 따내줍니다. 남들은 토마토가 수정이 잘 안 돼서 수정벌을 사다가 풀어놓거나 몸에 좋지 않은 토마토호르몬 약을 치기도 하는데, 저희는 주변에서 다 친환경으로 농사를 지어서 그런지 벌들이 많아 수정이 대체로 잘 됩니다.

요런 놈들을 창문과라고 합니다. 일종의 기형과인데, 말 그대로 토마토에 창문이 생겨서 속이 들여다 보입니다. 창문과를 발견하면 더 커지기 전에 즉시 따내 버립니다.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잿빛 잎곰팡이 병이 올해도 찾아왔습니다. 날씨가 습해지면서 잎에 곰팡이가 피어 광합성을 제대로 못하게 하는 병입니다. 관행농에서는 한방에 처리하는 농약이 있다는데, 유기농으로는 난황유, 광합성 미생물, 농촌진흥청에서 공시한 유기농 자재 등을 사용합니다. 농약처럼 한방에 해결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더 번지지 않는 효과는 있습니다.

이제 조금만 버티면 장마가 끝나고 쨍쨍 무더운 여름날이 시작되겠지요. 본격적으로 휴가철이 시작되면 저희집 뿐 아니라 마을이 온통 손님들로 북적북적할 터이구요. 올 여름 손님맞이 준비는 텃밭에 심어놓은 수박이 먼저 해주네요. 동전 만하던 수박이 이제 축구공만하게 커졌습니다. 커가는 수박 만큼이나 행복한 여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