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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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9년

9월과 함께 가을 농사가 시작되다

백화골 2009. 9. 1. 22:09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다. 저녁에 밭에서 일하는데 갑자기 찬바람이 세게 불더니 손이 시렸다. 9월 말까지 늦더위에 가뭄이 계속됐던 작년과는 사뭇 다르다. 아무래도 제대로 가을이 시작되는 것 같다. 8월 말에서 9월 초는 여름 농사를 정리하고 가을 농사를 시작하는 때다. 하나라도 놓치면 자칫 시기를 놓친다.

장수군 계북면에 있는 동갑내기 친구네 과수원으로 배를 따러 다녀왔다. 사과밭 귀퉁이에 조금 심은 것이라는데, 작년에 우연히 얻어먹고선 맛있어서 회원들한테 발송했다. 반응이 무척 좋아서 올해도 회원들한테 보내기 위해서 미리 이야기를 해 놨는데, 사과 수확이 막 시작되려는 철이라 미안해서 직접 따러 간 길이었다.

바쁜 데도 친구가 배를 함께 따 준다. 올해 비가 많이 와서 작년만큼 톡 쏘듯이 달지는 않지만 그래도 신선한 맛이 일품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배 값은 몸으로 때우기로 했다. 사실 시골에서는 이맘 때 사람 구하기가 참 힘들다. 우리는 가을 작물만 심으면 조금 여유가 있어지는 시기이기도 하고. 그래서 주말에 2, 3일 정도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도와주기로 했다. 일도 돕고 평상시 잘 만나기 힘든 다른 면(우리가 사는 면은 계남면이다) 농민들과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일하고 배우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메뚜기와 귀뚜라미 떼가 말썽이다. 양상추를 심어놨는데 뿌리 바로 윗 부분을 톡 잘라버린다. 매일 매일 요 놈들한테 당해서 사라진 양상추 자리를 땜방하느라 고생이다.

메뚜기들이 아예 밭에서 짝짓기를 하고 있다. 팔짝 팔짝 뛰어다니는 소리가 시끄러울 정도이다. ‘메뚜기 쌀’이라는 브랜드가 나올 정도로 메뚜기는 친환경 농사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당장 우리에겐 골치 아픈 해충이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마리의 메뚜기와 귀뚜라미를 잡아죽인다. 매일매일 살생을 해야 하니,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따르기도 힘든 게 농민이다.

요 청벌레라는 놈도 참 밉다. 나비가 날아와 앉았다 가면 며칠 후 어김없이 요런 청벌레들이 생기는데, 한동안 참새들이 와서 잘 먹어주더니 요즘 참새들 먹을거리가 여기저기 널렸는지 우리 밭을 잘 찾지 않는다. 손으로 직접 잡아주고 친환경 기피제로 방제해야 한다. 안 그러면 브로콜리나 양배추 잎이 남아나지 않는다.

해충 중에 가장 얄미운 놈, 노린재다. 손으로 죽이면 냄새도 고약하고 탐스럽게 익은 토마토며 콩에 붙어 쪽쪽 즙을 빨아먹는다. 노린재가 한 번 즙을 빨고 간 열매는 피부병에 걸리 것처럼 모양이 볼품 없어지기 때문에 상품성이 뚝 떨어진다.

바람 한 점 없는 늦여름 한 낮! 밤고구마를 캐기 위해 오랜만에 삽질을 하려니 힘들다. 올해 밤고구마는 회원들에게 한번 보낼 만큼 수확량이 나왔다.

가을 옥수수가 굉장히 잘 자라서 미리 울타리를 쳤다. 요 옆에 심은 여름 옥수수는 고라니가 다 먹어치웠다. 가을 옥수수만큼은 뺏기지 말아야지.

올해 토마토 농사를 마무리했다. 다른 작물은 끝나고 정리하는데 별다른 감정이 안 드는데, 토마토 밭은 정리하면 왠지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손이 특별히 많이 가는 농사인 데다 우리와 처음으로 농사 인연을 맺은 작물이라 애착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 키가 훌쩍 큰 놈들을 지탱하고 있던 유인집게를 끌러내고 다 뽑아내고 나니 밭이 허전해 보인다.

금세 토마토 밭 정리를 끝내고 퇴비와 미생물 넣고 밭 만들어 가을 작물을 심었다.

한참 일을 하는데 해가 져서 집에 들어와야 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분홍빛 노을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