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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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9년

논밭에 가랑비 내리던 날, 해 짧아져서 아쉬운 저녁

백화골 2009. 8. 27. 23:23

흐린 날씨,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린다. 잠시 제법 굵은 빗줄기도 쏟아진다. 내리 땡볕만 내리쬐던 날씨가 이어지다 비가 내리니 기분이 좋다. 커피 한 잔 마시며 비 오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비옷을 입고 밭으로 나선다.

배추를 심으며 아침 일을 시작했다. 어제 땅을 잘 만들어 놔서인지 흙 감촉이 좋다. 흐린 날씨여서 하우스 안에서 일하기가 참 편했다. 정식을 하자마자 해가 너무 쨍쨍 쬐면 안 좋은데, 배추가 뿌리를 잘 내릴 것 같다.

농업 관련 제품 이름들은 재미있는 게 많다. ‘마니따 고추’, ‘가뜨니 분무기’, ‘힘센 약제’ 등등... 배추를 심은 뒤 ‘수시로 알타리무’를 심었다. 수시로 심어도 잘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알타리무는 가을에 심어야 맛이 좋다. 비를 맞으며 알타리무 씨를 조심조심 넣었다.

한달 전에 심은 빨간 무 비트 사이로 풀이 많이 났다. 풀은 눈에 띌 때 바로 바로 뽑아주는 게 제일 좋다.

알타리무를 다 심고 비트 옆에 풀을 뽑아주고 나니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한다. 비가 많이 내릴 때 일하다보면 왠지 기분이 처량해진다.

점심을 먹고 오후엔 양상추를 심었다. 작물을 심을 땐 거리가 중요하다. 사람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듯, 작물 역시 너무 가까워도 멀어도 좋을 게 없다. 배추는 40cm 남짓 되는 간격으로 심어야 포기가 잘 차고, 양상추는 35cm 정도로 심어야 한다.

양상추를 심고 보니 옆에 애호박 그물망이 끊어져 튼튼한 끈으로 새로 망을 만들었다. 벌써 2년째 똑같은 상황이다. 작년에는 농사가 잘 되어서 끊어졌다고 생각했으나 올해 보니 애호박은 오이 그물망으로는 버티질 못한다. 우리가 작년 경험을 너무 좋게만 해석했다. 내년에는 꼭 그물망 두 겹이나 튼튼한 끈으로 유인 그물을 만들어야겠다.

사다리 끝까지 올라가니 오늘따라 다리가 후들거린다. 사과밭에서도 일을 많이 해보고, 하우스 작업할 때마다 사다리에 올라가지만 항상 조심하게 된다. 한번 사다리에서 떨어진 적이 있는데 아찔한 순간이었다.

애호박 그물망 보수를 마치니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얼마 전 같으면 대낮같이 환할 시간인데, 흐린 날씨인 데다가 요새 들어 정말 해가 짧아졌나보다. 백화골에 벌써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브로콜리와 양배추에 기피제 치는 작업까지 마치고 나니 사방이 완전히 깜깜해졌다. 하루하루 점점 낮이 짧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8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