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도시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농촌에서는 새벽 5시30 이후부터는 전화를 해도 전혀 실례가 되지 않는다. 새벽부터 일하는 게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혹 늦잠 자다가 전화벨 소리에 깨는 경우, 전화 건 사람은 당당하고 자다 깬 사람이 오히려 쥐구멍을 찾는다.
대신 밤 9시 이후에는 전화하는 사람들이 없다. 9시 30분만 넘어도 전화하기가 망설여진다. 귀농자들이나 밤늦게 전화를 한다. 아무튼, 아침 6시 일어날까 말까 망설이다 조금만 더 자야지 하는 찰라에 계남면 농민회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내일 농민회에서 전북도연맹 가족모임을 하는데 혹시 쌈채소가 넉넉하면 가져오라고 연락하신 참이었다. 요즘 장마에 고온까지 겹쳐서 쌈채소가 성장을 거의 멈추고 있다고 했더니 아쉬워하며 전화를 끊으셨다. 전화 덕분에 일찍부터 일을 시작했다.
아침부터 아주 맑은 날씨다. 집 마당에서 자라는 참나무 잎들이 진한 녹색으로 변해있다. 이 시절에는 잘 모르지만 가을이나 겨울이 되어 이 사진들을 보면 여름을 그리워할 것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날씨인가 감탄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토마토를 수확하러 밭에 나가보니 옆에 심은 참외가 익었다. 올해로 5년째인 참외 농사는 또 실패다. 정말 많은 공과 시간을 들여서 곁순도 잘 쳐주고, 무당벌레 잡아 넣어가며 진딧물을 잡아주었건만, 흰가루병이 잎을 완전히 작살내버려 수확량이 많지 않다. 난황유를 여러 번 쳤지만 속수무책. 내년에는 올해 시행착오를 잘 생각해서 흰가루병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말테다. 아무튼, 수확량이 현저히 떨어지기는 하지만 회원들에게 조금씩 공평하게 보낼 만큼은 익어가고 있다.
맑고 화창한 날씨를 반기듯이 돼지감자 잎이 활짝 피어있다. 비가 오고 해가 뜨니 하루가 다르게 하늘로 쑥쑥 올라간다.
여기저기서 문자가 온다. 오늘 일식이 있단다. 어쩐지 날씨가 우중충해지면서 좀 어두워진다 했더니 달이 해를 가리고 있었구나. 용접용 마스크를 쓰고 하늘을 보니 일식 장면이 생생하게 보인다.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과 말로는 “가뜩이나 일조량이 부족한데 일식까지 일어나면 어떡하라고...” 하면서도 용접용 마스크를 돌려쓰며 일식도 구경하고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요즘 다들 농사짓느라 바빠서 별로 말도 못하고 지냈는데 좋은 핑계 거리가 생겨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일식이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마을이 살짝 흐려졌다. 햇볕이 부족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싶을 정도로 답답하고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일식은 끝나고 오후가 되자 약속이나 한 듯 마을의 모든 집들에 빨래가 널렸다. 그동안 비 때문에 못 널던 빨래를 한꺼번에 말리느라 분주한 모습.
옥수수 꽃에서 벌들이 열심히 꽃가루를 모으고 있다. 어찌나 열심히 일을 하는지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윙윙거리며 날아다닌다. 오늘도 고라니는 오지 않았다.
비 맞으며, 질척이는 밭에 발 빠지며 어렵게 심은 옥수수가 며칠사이 휙 자랐다. 요런 재미로 농사 짓는다.
우리 밭 옆에서 자라는 사료용 옥수수다. 비를 맞고 쓰러져 있던 놈들이 어느새 벌떡 일어나 커 올라간다. 이 밭 주인 아저씨는 소를 키우는 분인데, 가을에 호밀을 뿌려 봄에 거두고 바로 사료용 옥수수를 심어 가을에 거두는 농사를 몇 년째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 호밀과 옥수수는 다 빼곡이 심어놓으면 멋있는 그림이 나오기 때문에 우리는 일하다 종종 이 밭에 바람 부는 모습을 보며 쉬곤 한다.
해가 꼴딱 넘어간 시간에 브로콜리와 오이, 애호박 등에게 잘 자라라고 깻묵액비와 유용미생물 등을 듬뿍 뿌려주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농촌의 여름 하루는 언제나 휙 지나가 버린다. 날씨가 맑아서 가족회원 발송 작업하기 좋았던 날. 일식으로 오랜만에 재밌는 이야기꽃도 피웠던 날, 하지만 미디어법 날치기 처리를 보면서 하루종일 분노가 일어나는 하루이기도 했다.
내일은 가을 양배추와 브로콜리 심을 밭 만들기, 가지와 청양고추 옆에 올라오는 풀 뽑아주기, 새로 심은 열무에 친환경 기피제 쳐주기 등의 일이 기다리고 있다. 여름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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