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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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9년

고구마순

백화골 2009. 7. 28. 23:37

몇 주 동안 계속된 장맛비에 고구마 밭이 놀랄 만큼 무성해졌습니다.  고구마 뿌리를 잘 들게 하기 위해선 줄기가 너무 자라도 문제랍니다. 무서운 기세로 뻗어나가는 고구마 줄기를 어느 정도 쳐서 진정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 작업에 따른 부수적인 결과물로 나오는 것이 바로 고구마순입니다. 마늘 뿌리를 잘 들게 하기 위해 마늘쫑을 뽑았는데, 그 마늘쫑이 훌륭한 반찬거리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이번 주 회원들에게 보내는 발송 품목에 고구마순을 넣었습니다. 고구마 밭이 멀리 있다 보니 한 번 나갈 때 좀 넉넉히 끊어 옵니다.

포장하고 남은 고구마순을 갖고 들어와 시간 날 때 껍질을 깝니다. 잎 바로 밑 부분을 똑 꺾어서 한 번 주욱~ 훑어 내리고, 다시 절반으로 똑 꺾어서 남은 껍질 부분을 한 번씩 쭉쭉 훑어 내리면 끝.

손 많이 가고 여러 단계 거치는 요리는 딱 질색이어라 하는 게으른 백화골댁이지만, 이상하게 고구마순 다듬는 일만은 싫지가 않습니다. 줄기가 똑 꺾이는 느낌도 좋고, 껍질이 수월하게 쑥쑥 벗겨지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소박하고 신선한 고구마순 향도 좋구요. 하나 둘 고구마순을 벗기다 보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기도 합니다.

어렸을 적, 엄마가 고구마순 반찬을 자주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엄마 옆에서 종종 고구마순 껍질 벗기는 걸 도와드린 기억이 있는 걸 보면 말이죠. 정작 고구마순 요리를 어떻게 먹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엄마랑 마주 앉아 고사리손으로 고구마순 껍질 벗기던 시간만은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아마 그때의 기억 때문에 지금의 ‘고구마순 다듬는 걸 귀찮아하지 않는 나’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모녀가 마주 앉아 별 말도 없이 묵묵히 고구마순을 다듬던 조금은 나른하고 평화로운 일상의 순간.  유년의 추억 속에선 이렇게 야채 다듬는 단순한 일 하나도 소중하게 저장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와 보면 고구마순은 대체로 주부들의 환영을 받지 못하는 야채가 아닌가 싶습니다. 같은 마을 이웃 몇 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나 같으면 누가 고구마순 보내주면 싫을 것 같은데. 그거 껍질 까기 너무 귀찮잖아.”라는 말을 벌써 두 세 번이나 들었거든요.

하긴, 누구나 고구마순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닐 테고, 별로 화려하고 맛깔스럽지도 않으면서 손만 많이 가는 야채로 회원들 집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건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되네요.

고구마순,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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