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분이 지어주신 것만 받는 게 민망해서 저도 제가 만들고 있는 책을 한 권 보냅니다.”
라는 댓글이 블로그에 달리고 난 며칠 뒤, 정말 백화골 앞으로 책이 한 권 배달되어 왔습니다.
회원 중 출판사에서 일하시는 분이 있는데, 이 분이 책을 선물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몸의 양식을 보냈더니 마음의 양식이 되어 돌아왔네요. ㅎㅎ 이렇게 반가울 수가!!
너무나 고맙고 반가운 마음에 책 표지부터 한참 동안 감상했습니다. <벨 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모티브북). 제목부터가 만만치 않죠? 요즘 세상에 ‘계급’ 얘기에 흥미를 가질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런 사람들에게 도전장이라도 내밀듯 제목에서부터 단도직입적으로 ‘계급’을 꺼내놓는 책이라.
그런데 재미없고 딱딱한 사회과학 서적일 거라고 판단해버리기엔 표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허름한 차림으로 서로를 보듬고 서있는 흑백의 흑인 가족 사진이 ‘사회과학 서적? 우린 그런 거 몰라. 이건 우리 가족 이야기야. 우리 이야기 좀 들어보지 않을래?’ 하고 부르는 것 같지 않나요?
그날부터 읽기 시작해 어제야 마지막 장을 다 넘겼습니다. 두껍지도 않은 책 한 권 읽는데 한 달이나 걸렸네요. 농번기 농사꾼의 생활이라는 게 먹고 자고 일하는 참 단순한 삶이다 보니 책 한 권 읽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자기 전에 조금씩 조금씩 읽어나가는 맛이 꽤 쏠쏠했답니다. 정말 재미있는 책이었으니까요!
표지가 준 예감이 맞았습니다. 벨 훅스, 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지만 미국의 대표적인 흑인 페미니스트로서 꽤 유명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대학 교수이자 집필가이기도 하고요. 아무튼 이 벨 훅스가 미국 사회에서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계급 문제를 차근차근 짚어나가고 있는데, 어려운 이론이나 경제용어 같은 것은 전혀 들먹이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경험, 성장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 가족들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풀어나갑니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직접 살에 와 닿는 계급 문제, 단지 미국뿐만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속의 현실적인 계급 문제와 만나게 됩니다. 때론 화가 나기도 하고, 마음 아프기도 하고, ‘아, 정말 그렇구나’ 동감을 하기도 하면서 말이죠.
저자가 내놓는 소박한(어떻게 보면 뻔한) 대안들도 마음에 와 닿습니다. 불필요한 소비주의에 저항하고, 간소하게 살고, 가진 것을 나누고... 사실 옛날에 이 책을 읽었다면 이런 대안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겁니다. 뭔가 확 바꿔버릴 수 있는 사회구조적인 방법만이 대안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개개인의 이런 ‘뻔한’ 노력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조금은 알고 있답니다.
농산물로 맺어진 작은 인연까지 소중히 챙겨주신 회원님 덕에 오랜만에 좋은 책 참 잘 읽었습니다. 고마운 이들이 참 많은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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