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번개가 20번 정도 세게 백화골에 내리쳤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 우리 마을 사람들은 컴퓨터 같은 전자 제품이 고장날까봐 자다가 일어나 전원 플러그를 뽑아놓고 잤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시골에서는 번개로 전자제품이 고장나는 일이 많다. 마땅한 AS센터도 없어서 뭔가 고장나면 고칠 길도 막막하다. 근처 소도시인 전주나 남원까지 나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번개치는 날이면 다들 조심조심 미리 대비를 한다.
번개가 어찌나 강하게 치던지 무슨 영화에서처럼 온 집안이 순식간에 번쩍 번쩍, 환해졌다. 비도 세차게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언제 그렇게 천둥번개에 비가 내렸냐는 듯이 맑은 날이 펼쳐지고 있었다. 장마가 끝난 것일까? 일기예보를 보니 며칠 동안은 비 온다는 그림이 없다. 맑은 해가 표시되어 있다.
밭에 나가니 계속된 비로 풀이 엄청나게 올라와 있다. 장마 후에는 사람 키만큼 풀이 큰다고 보통 말하는데 직접 겪어 보면 끔찍한 그림이다. 이 풀을 또 언제 뽑아주나 마음을 다스리며 오늘 할 일로 정한 자주 감자를 심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가을 감자 농사는 쉽지 않다. 감자가 고온에 싹이 잘 안 나오고 가을에 알이 잘 안 찬다. 그래서 가을 감자 농사짓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가을 자주 감자의 유혹은 대단하다. 일반 감자 먹다가 자주 감자를 먹어보면 정말 맛있다고들 하는데, 찬바람을 맞힌 후에 캐는 가을 자주 감자 맛은 더더욱 빛난다. 하지만 사실 제대로 수확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종합해보고 작년엔 7월31일에 자주감자를 심어봤다. 결과는 가뭄 때문이었는지 실패였다. 알이 차질 않았다.
백화골이 고랭지여서 싹은 잘 올라왔는데, 아무래도 시기가 늦은 것 같았다. 그래서 올해는 작년보다 10일 앞당겨 7월20일에 심어야지 벼르던 참이었다. 잦은 비로 계획보다 하루 늦어졌다. 그래도 올해는 제대로 가을 자주감자를 수확할 수 있을 거란 작은 희망을 품고 파종을 했다.
감자 심는 와중에 옥수수 밭에 고라니가 들어왔나 살펴보았다. 여기저기 발자국이 있나 찾아보았으나 아직은 흔적이 없다. 제발 다음주 수확할 때까지 고라니가 오지 않아야 할텐데.
해가 져서 깜깜해질 때까지 감자를 심었다. 자주 감자처럼 붉은색으로 물드는 하늘이 오늘따라 멋지다. 가을 감자가 잘 자라서 회원들과 풍성하게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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