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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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9년

풍요로운 여름 밥상

백화골 2009. 7. 29. 23:23

아침에 나와보니 하늘이 파랗다. 장마가 정말 끝나는 것일까? 일기예보에 앞으로 며칠 동안 ‘맑음’만 표시되어 있다. 

옥수수를 수확하러 밭에 나가보니 불청객이 찾아온 흔적이 남아있다. 올해는 고라니가 안 온다고 좋아했는데, 옥수수가 익기를 기다렸나보다. 하룻밤 새 옥수수 몇 개를 맛있게 먹어치우고 갔다. 고라니는 멧돼지처럼 밭을 싹쓸이하지는 않지만, 한 번 길을 트면 거의 매일 밤 출근하며 야금야금 먹어치우곤 한다. 더 이상 오지 말라고 냄새가 강한 목초액을 밭 주변에 뿌려 두었다. 이게 정말 효과가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들긴 했지만. 

봄 상추 심었던 자리에 퇴비를 넣고 밭을 만들었다. 이 자리에는 가을 브로콜리와 양배추를 심을 계획이다. 조금 삽질을 하니 금세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올해는 토마토 농사가 아주 잘 된 편이다. 난황유와 계란칼슘, 바닷물, 한약재 등을 제 때 제 때 잘 넣어주어서 인가보다. 한 달 동안 지속된 장마에도 곰팡이병과 흰가루병이 심하게 번지지 않았다. 하지만 일조량이 부족해 당도는 그다지 높지 않은 편. 며칠만 해가 쨍쨍 내리쬐어도 금세 당도가 높아질 것이다.

아침 일찍 수박 농사짓는 장수군 농민회 부회장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수박을 가져가란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수박을 가져가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윗집 이웃과 함께 가보니 올해 역시 우리 마을 사람들 다 하나씩 나눠줄 만큼 풍성하게 수박을 내어주셨다.

고창 수박이니 무등산 수박이니 하지만, 장수 사람들은 장수 수박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가락동 공판장에서도 장수 수박이 아주 인기가 좋다고. 광주나 부산 공판장에는 단가가 안 맞아서 아예 가져가지도 못하게 한다나.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다 마을로 돌아와 집집마다 수박 배달을 한 뒤 하나 갈라서 먹어보니 아삭아삭 신선한 맛이 일품이다. 매년 잊지 않고 수박을 챙겨주시는 회장님의 고마운 마음 때문에 더더욱 달고 맛있게 느껴졌다.

미루고 미뤘던 콩튀밥을 만들었다. 우리 집에서는 장계면 장이 위치상 가까운데, 장수읍 쪽이 뻥튀기 하는 가격이 싸다고 해서 조금 멀리 찾아갔다. 콩 튀밥을 튀기는 동안 입담 좋은 뻥튀기 할아버지의 인생역정 스토리가 펼쳐졌다. 4년 전까지 건축일을 하다가 허리 수술 후 통증이 심해 작년부터 뻥튀기 일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처음엔 불 조절이 미숙해 10방 튀기면 8방은 실패하는 바람에 곡식 값 물어주느라 바빴다고. 틈나는 대로 남원 장이나 진안 장터로 돌아다니며 뻥튀기 튀기는 작업을 하루종일 지켜본 결과 여러 가지 노하우를 알게 되었고, 이제는 30여 가지가 넘는 알곡을 각 종류별로 맞춤해서 튀길 수 있게 되었다고 자랑하신다. 재미난 이야기에 커피도 타주시고, 자두도 먹으라고 내주시는 친절한 할아버지 덕분에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농산물 발송 끝나고 나면 남는 농산물이 밥상에 올려진다. 무더운 여름이지만 이런 풍요로운 밥상이 있어 기운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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