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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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9년

2009년 여름! 너를 기억하마

백화골 2009. 7. 19. 22:56

아주 특별한 여름이다. 비와 강풍으로 하루하루가 완성된다. 해를 본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작물은 잘 못 자라고 병충해는 극성을 부린다. 잊을 만 하면 내리는 집중 호우에 다들 밤잠 못 자고 새벽에도 논물 보랴, 하우스 관리하랴 분주하다. 며칠 전 새벽 3시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속옷 바람으로 하우스 문 닫으러 뛰어나가는 데 참 기분이 묘했다. 하루하루 땀과 빗물에 젖어 산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번 장마 질기다며 혀를 찬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비 피해 없냐고 안부 연락을 한다. 다행히 백화골에 큰 비 피해는 없다. 안 좋은 점이라면 작물이 너무 안 자란다는 정도. 특히 상추가 아예 성장을 멈춰 버렸다. 해를 보고 광합성을 해야 하는데 계속 흐린 날만 이어지니 그럴만도 하다.

어제 밤에는 밤새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비는 많이 안 와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하며 아침을 먹는데 아랫마을 이장님한테 전화가 왔다. 며칠 전에 옥수수와 들깨를 심은 우리 밭 멀칭한 비닐이 바람에 다 날아갔다는 연락이었다. 제일 하기 싫은 일이 바로 비닐멀칭하고 며칠 뒤에 비닐이 날아가 다시 덮어주는 일이다. 비는 내리고 바람은 분다.

밖에 나가기 싫지만 어렵게 심은 옥수수가 다 부러질까 얼른 밭으로 달려갔다. 생각보다 심하진 않았지만 비에 흙이 다 쓸려 내려가서 멀쩡한 줄도 비닐이 날아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푹푹 발이 빠져서 일하기도 어렵고 흙을 퍼서 단도리를 하는데도 엄청난 힘이 들어간다. 다행히 비가 그치고 마음을 편하게 먹고 일을 하니 한나절 만에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옥수수가 싹이 잘 났는데 비바람에 많은 수가 쓸려 내려갈 판이어서 옥수수도 흙으로 잘 덮어주고 살려주었다.

일 마치고 밭 주변을 돌아보니 이 장마 속에서도 울타리로 심어놓은 해바라기가 활짝 피었다. 그냥 씨를 심었을 뿐인데, 금세 자라서 꽃까지 핀 해바라기를 보니 참 대견스러웠다. 열심히 꿀을 빨아 먹는 벌도 신기해보였고. 흐린 날씨지만 자연은 어느새 제 할 일을 다 하고 잘 자라고 있다는 게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씨앗을 사려고 장터에 가는 길, 이 장마 속에서도 멀쩡한 둑을 부시고 새로 쌓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저러다 갑자기 폭우라도 내리면 어떡하려는지. 날씨도 안 좋은데 안 해도 되는 공사를 하는 곳을 보니 기분이 나빠진다.

우리가 ‘읍내에 볼 일 보러’ 갈 때마다 다니는 장수군 장계면 소재지다. 하늘에 검은 먹구름이 가득하다. 평소 시골 치고는 사람이 많은 곳인데 장마 기간이어선지 한산하다. 씨앗을 사가지고 올라오는 길, 또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요즘엔 비가 와도 왠만하면 밖에서 일을 하고, 좀 심하게 쏟아진다 싶을 때만 비를 피한다. 이것저것 일에 익숙해져서 좀 더 여름을 평온하게 보낼 거라 생각했는데 장마로 제동이 걸렸다. 

내일도 아침부터 남부 지방에 폭우가 쏟아진다는 예보다. 내일은 농산물 가족회원 발송날이라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밖에서 돌아다녀야 하는데. 올 여름 참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올 겨울쯤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을까. 지난 여름, 참 비가 많이 와서 고생도 많고 힘들었지만 보람된 하루하루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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