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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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7년~2008년

가뭄의 단비 같은 고마운 농활대 (2008.06.27)

백화골 2009. 3. 4. 12:44

마을 생긴 후 처음으로 농활대가 찾아왔다. W대 학생 12명, 6박7일을 꼬박 채우는 일정.

그동안 ‘농촌 체험활동’을 내세운 지원자들이 하루 이틀 정도 어설프게 마을을 거쳐간 적은 있었지만, 대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일주일씩 머물다 가는 오리지널 농활은 올해가 처음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동안 집집마다 묵혀놓고 있던 농사일들을 이번 기회에 말끔히 치워버리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농활대가 도착하기 전부터 원기충천 해 있다.

물론 여기에는 간만에 ‘젊은 애들’을 만난다는 설렘도 없지 않다. 도착 첫 날. 남학생들이 모두 똑같은 헤어스타일(6.25 전쟁 고아 스타일의 바가지 머리)을 하고 있다. 요즘 젊은 애들 사이에서 최신 유행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게다가 12명이 똑같이 하늘색 농활 티셔츠를 맞춰 입고 돌아다니니, 누가 누군지 헛갈릴 정도다.

아무튼 첫날은 짐 풀고 숙소 주변 정리하며 오후 시간을 보낸 농활대원들은 저녁 때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하는 조촐한 상견례 자리를 가졌다. 아이들은 내일부터 어떤 일들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는 채 해맑게 까르르 웃어대느라 바쁘다. 흐흐흐, 내일 보자 요놈들아.

우리집에서는 4일 동안 2명이 붙어 일을 했다. 1학년 남학생 2명이 고정적으로 출근 도장을 찍으며 주로 감자캐는 일을 했다. 나름 열심히 일을 하겠다는 의욕을 가지고 있는 착한 아이들이었으나, 오후 나절부터는 삽질 한 번 할 때마다 “으흐흑-” 하는 신음소리가 후렴구처럼 울리니 애처로운 마음에 더 이상 일을 시킬 수가 없다. 쉬는 시간도 많이 가지고 6시가 되기 전에 일찌감치 퇴근들을 시켰다. 어기적어기적 걷는 폼이 며칠동안 근육통 때문에 꾀나 고생할 것 같다. 

그래도 우리집에 온 학생들은 3일째부터는 나름대로 리듬을 타며 일하기 시작했지만, 기계같이 일하기로 소문난 아랫집 형님네에서 일하던 학생들은 몸져누워 아예 일어나지도 못했다고 한다. 너무 힘들어서 일하던 도중 오바이트 하는 아이도 있었다고.  사람 둘이 더 붙으니 작업 속도도 쭉쭉 나간다.

아무리 일 못하는 햇병아리 대학생이라도 시골에선 사람 손 하나가 너무나 고맙다. 감자캐기가 끝나고 나니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빈 밭을 바라보던 학생이 한 마디 한다. “이제 감자만 보면 토 나올 것 같아요. 평생 볼 감자 이번에 다 봤어요.”        

<우리 때 농활이랑 달라진 점, 똑같은 점>

똑같은 점 : 힘들어서 죽기 직전까지 간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한다, 고무신과 밀짚모자와 티셔츠를 맞춰 입었다, 식사당번이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아침으로 생라면을 씹고 나오기도 한다.  

달라진 점 : ‘삼천만 잠들었을 때’로 시작하는 농민가를 아는 학생이 단 한 명도 없다(이 점은 정말 놀라웠다!), 농활을 마치고 나면 학점(1회에 한해 2학점)을 받는다, 커플인 아이들끼리 마을 안에서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다닌다, 농활 기간 도중 교수가 방문해 일지 점검을 하고 간다, 막걸리를 잘 마시지 않는다. 남학생들도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고 일을 한다.

학생들이 걸어놓은 플래카드 때문에 마을 주민들 사이에 “그래, 내가 첫사랑에 실패만 안 했어도...” 식의 농담이 한동안 오갔다. 우리마을 주민들 연령은 3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 아이들은 잠시 고민하더니 삼촌, 이모로 호칭을 통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