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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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7년~2008년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2008.07.05)

백화골 2009. 3. 4. 12:47

시골에는 회장님이 많다. 길거리에서 “회장님!”하고 부르면 적어도 10명은 뒤를 돌아볼 것이다. 친하게 지내는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스무 명은 넘는다. 왜 이렇게 회장님들이 많을까.농민회 면 지회 모임에만 나가도 모이는 회원 10여명 중에 회장님이 4분이다.

두 분은 예전 회장님, 한 분은 현재 회장님, 나머지 한 분은 한달 정도 군 농민회 임시 회장을 지낸 회장님... 그리고 한 번 회장님은 영원한 회장님이라 이렇게 회장님이 계속 늘어간다.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직책이 높아진다. 평사원에서 대리, 과장, 팀장, 부장, 이사 등등...

한국처럼 호칭에 민감한 상황에서 나이든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직책으로 불러주면 된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농장의 주인일 뿐 아무 직책이 없다. 그래서 인지 ‘자리’에 집착한다. 자꾸 모임을 만들고, 이것저것 직책을 맡는다. 그런데 중요한 건 회장이란 직책은 좋아하는 데 일은 안 하려고 하는 점이다. 그래서 모든 모임에는 총무가 있다.

얼굴 마담은 회장에게 맡기고 대부분의 일은 총무가 한다. 총무는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맡는다.이러저러한 직책들 중에서도 가장 인기 좋은 것은 바로 이장이다. 한 동네의 대통령으로 군림하며 부동산 거래부터 모든 지원, 보조사업을 관할하고 마을 주민들간의 각종 경조사와 이해 관계를 조절한다. 최고의 수혜는 이장에게 정보가 독점된다는 점이다.

시골 행정 기관에서는 아직도 이장을 통해서 모든 일을 처리한다. 비민주적이고 문제가 많지만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권과 고급 정보가 이장한테 모인다. 이장은 행정기관에서 30만원 정도 활동비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이장 선출할 때 치열한 경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근처 한 마을에서는 전 이장이 횡령 혐의가 있다고 탄핵을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회장님’들이 많은 시골 문화가 그냥 재밌게만 느껴졌다.

한번 회장은 영원한 회장인 호칭 문화도 그렇고, 일은 안 하면서 명함에다 직책 넣기 좋아하는 분위기도 그랬다. 하지만 시골서 살다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시골에서 사람들이 자꾸 모임을 만들고, 직책을 맡으려는 건 그만큼 현실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힘이 없고 돈이 없어서이다.

농촌에서 살아남기 힘들어지니까 몇 명 남지 않은 사람을 모아서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되려 하는 것이다. 직책 한 가지라도 가지고 있으면 자신에게 힘이 있는 듯, 뭔가 살 길이 열릴 듯 믿어져서인 것 같다. 어제 저녁에 토마토 밭에서 일하다가 뭔지 모를 벌레에 물려 왼쪽 눈이 거의 감길 정도로 퉁퉁 부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동네 병원에 갔다 왔는데, 대기 환자들이 전부 노인들뿐이었다. ‘저 노인 분들도 힘들게 농촌에서 살아 남아온 회장님, 혹은 이장이겠지’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아팠다. 뭔가 계속 잃기만 하면서 살아왔을 그 분들의 인생,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노인들로 가득한 우리 농촌의 회장님들이 기펴고 살 수 있을 날은 언제쯤 올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