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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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07년~2008년

곁순이 미워요 (2008.06.25)

백화골 2009. 3. 4. 12:42

‘곁순이’라는 여자 이야기가 아니다. 곁순. 줄기 곁에서 나는 순이라는 뜻이다.

작물들은 보통 싹이 나고, 잎이 생기고, 원줄기가 올라가다가 적당한 시기가 되면 꽃봉오리가 맺히고, 꽃이 활짝 피었다가 꽃 떨어진 자리에 열매가 맺힌다.

그런데 원줄기 하나 올리는 것으로는 씨 퍼뜨리기 작업을 완수하지 못할까봐 불안해 하는 많은 식물들이 원줄기 마디마다 곁순을 키워낸다. 혹시라도 원줄기 꽃봉오리가 제 역할을 못해낼 경우를 대비한 수많은 예비군단인 셈이다.

농부 입장에선 요 곁순들 때문에 농번기가 두 배로 바빠진다. 제때에 곁순을 제거하지 못하면 탐스럽고 맛있는 열매를 거둘 수 없기 때문에 수시로 곁순 제거 작업을 해줘야 한다. 한 번 따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서 두 번 세 번 계속 곁순이 올라오기 때문에 몇 번이나 이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아주 지루한 작업이다.

곁순이 나는 주요 작물들을 꼽아보면 우선 고추. 원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일명 ‘방아다리’ 지점 아래의 곁순들을 집중적으로 따준다. 잎도 방아다리 밑으로 2~3장만 남기고 그 아래는 정리해준다.

방아다리에 열리는 꽃은 일찌감치 따는 사람도 있고 안 따고 열매로 키워내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집은 방아다리 고추까지 키워서 따낸다. 고추 곁순은 서리 와서 농사 끝날 때까지 총 4~5번 정도는 따내는 것 같다. 

애호박과 오이는 재배법에 따라 곁순 제거 방법도 달라진다. 우리집은 하우스에서 외줄 재배 방식으로 재배하기 때문에 곁순을 열심히 쳐낸다.

7~8마디 아래쪽에 달리는 열매와 꽃도 모두 따내야 한다. 오이는 그래도 괜찮지만, 애호박은 아침저녁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덩굴줄기의 기세가 어찌나 드센지 결국 중간에 포기하고 자라는 대로 놓아두게 된다. 오이와 호박 모두 잎이 까실까실 따갑기 때문에 곁순 작업 할 때 장갑은 필수다.

가지 곁순은 맨손으로 따고나면 손에 보라색 물이 든다. 곁순 나오는 세도 그리 세지 않고, 손에 닿는 보드라운 느낌도 좋아 곁순 따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1년에 2~3번 정도 쳐내면 된다. 

브로콜리. 큰 꽃봉오리 하나만 키우기 위해 다른 작은 봉오리들은 따낸다.

감자. 씨감자 하나에서 너무 많은 싹이 올라올 경우 3대 정도 남겨 놓고 나머지는 제거한다.

옥수수. 원줄기 양쪽으로 하나씩 올라오는 곁순 2개를 똑똑 따낸다. 단, 옥수수 곁순은 어릴 때 제거해야 한다. 곁순이 너무 큰 상태에서 제거하면 원줄기까지 흔들려버리기 때문에 차라리 그냥 놔두는 것이 낫다. 옥수수 곁순은 보통 한 번만 제거해주면 끝이다.

참외. 원줄기는 3~4마디 때 순지르기 하고, 아들줄기 두 줄기만 남기고 다 쳐내고, 15마디 때 순지르기 한 뒤 아들줄기 5마디 이상 되는 마디에서 손자줄기 2줄만 남기고 다 쳐내고...아무튼 복잡하다!

피망과 파프리카. 방아다리 위에서부터 계속 두 줄기 재배 형식으로 순을 쳐낸다.

이렇게 곁순 때문에 허리 휘는 수많은 작물들 중에서도 가장 으뜸! 단연 곁순의 제왕이라 할 만한 놈은 바로 토마토다. 힘들게 곁순을 치고 일주일 뒤 가보면 또 거창하게 자라있다. 토마토 농가들은 여름 내내 곁순 작업 하느라 볼일 다 본다. 더구나 토마토 즙액은 워낙 진해서 열 주 정도만 따고나도 손이 온통 시커매진다.

일을 오래 하고 나면 수세미로 손을 박박 문질러도 이 물이 잘 빠지지 않는다. 더구나 토마토 곁순 제거 작업은 예민한 작업이라 장갑을 끼더라도 얇은 것으로 껴야 하기 때문에, 결국엔 손에 토마토 물이 배게 되어있다. 토마토 농사꾼들은 그래서 손톱 밑이 언제나 시커멓다. 

아무튼 곁순 때문에 허리가 휘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곁순을 미워할 수만은 없다. 곁순이 잘 자란다는 것은 그만큼 식물이 왕성하게 무럭무럭 크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모종이 안 좋거나 냉해를 입었거나 병이 든 작물들은 곁순도 잘 자라지 않는다. 일주일 새 또 자라더라도 곁순이 나주는 것만으로도 사실 고마운 일이다. 그만큼 강인한 생명력의 증거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