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에 부랴부랴 가족회원제 발송 작업을 끝내고 있는데, 평소 이것저것 우리를 많이 도와주는 '사과의 꿈'(과수원 이름이다^^) 형님한테 연락이 왔다. 태풍이 온다고 사과 따는 것 좀 급하게 도와달란다. 원래 일요일에 가기로 약속되어 있었는데, 사과 다 떨어지기 전에 따야 한다고 해서 지금 달려오라고 한다.
오후 네시 조금 넘어서 '사과의 꿈'에 가보니,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사돈에 팔촌까지 아는 사람이란 아는 사람은 다 불렀는데, 워낙 일손이 없는 시기라 젊은 사람은 하나 없이 다 어르신들 뿐이다. 나이드신 분들은 사다리를 못 타기 때문에 높은 데 달린 사과는 못 딴다.
게다가 태풍 때문에 완전 비상 시국 같은 분위기. 절박한 기운이 농장 전체에 퍼져서 다들 미친듯이 일한다. 사다리를 타고 사과를 따고 이리 저리 사과를 나르고 나니 벌써 해가 졌다. 그런데도 일은 끝날 상황이 아니다. '꿈 형님'네 집에 일하러 가면 품삯 대신에 맛난 고기와 음식, 술을 주시는 분이라 내심 저녁에 일 끝나면 오늘도 푸짐하게 먹겠거니 했던 기대는 여지 없이 무너지고.... 무지막지한 야근이 기다리고 있다.
비는 장대처럼 쏟아지고 그 비를 다 맞으며 어둠 속에서 사과를 나르고 선별하고... 2주간 계속된 가을 장마로 과수원들은 모두 엄청난 손실을 입었는데, 조금이라도 더 햇볕 쬔 다음에(당도를 높이려고) 판다고 수확을 며칠 늦춰두었던 사과가 이제 또 태풍 앞에 우수수 떨어지게 생겼다.
하지만 일손은 턱없이 부족하고. 이런 바쁜 철에 장수군에서는 '사과랑 한우랑 축제'라는 대형 관변 행사를 치른다고 한다. 일정을 1주일 전에만 잡았다해도 이해가 가는데, 지금은 추석 전 주. 사과 농가는 물론이고 다른 농가들 모두 가장 바쁜 철이다. 다들 한 마디씩 한다. 세상에 이 바쁜 철에 돈 쳐들여가며 왜 그런 행사를 하냐고.
일은 밤 11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비 맞으며 일했더니 몸에 힘이 쏙 빠지고, 감기 기운도 돌고 피곤하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또 계속 비가 내린다. 내일 오후부터 태풍이 온다는데, 제발 큰 피해 없이 지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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