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시작됐다. 달이 바뀌면서 아침 저녁으로 찬 바람이 분다. 불 안 때고 더 버티려 했으나 아내가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나무 보일러에 불을 넣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불 때려니 보일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새벽에 보일러 고치고, 난리를 친 끝에 집이 따뜻해졌다. 도시 있을 땐 상상도 못하던 일인데, 이제 간단한 보일러 고장 손보는 것 쯤은 일도 아니게 됐다.
쌈배추가 인기가 좋다. 여러 곳에 광고를 하지 않았는데, 인터넷에 올린지 하루만에 1주일 분이 예약되어 버릴 정도였다. 요즘 채소 값이 비싼데다, 그동안 직거래를 통해 만난 분들이 많아져서인가보다. 사실 농약 안 치고 배추 농사하기가 힘든 일이나, 주변에서 도와주는 유기농 농사 고수들도 많고, 우리와 연결된 소비자들도 조금씩 구멍 뚫린 배춧잎 쯤은 기꺼이 이해해주기 때문에 그다지 '뼛골이 빠지게' 농사 짓지는 않는다. 요즘 청벌레와 메뚜기가 극성인데, 천적을 풀어주다 이제는 아예 아침저녁 손으로 잡는다.
상추 공판장 출하는 '1일 천하'로 끝났다. 가격이 비싸게 나와서 마음 먹고 공판장 출하를 한달만 해보려 했으나 상추가 자라주질 않았다. 물을 많이 주고 며칠만에 가봐도 크기가 그대로다. 이렇게 안 자라니 가격이 좋지. 게다가 1주일새 상추 가격이 제자리(퇴비값도 안 나오는 가격)를 찾았다. 폭등한 가격만 보고 새로 상추 심은 농민들 또 손해나게 생겼다.
여름부터 해는 안 나고 비만 오는 날씨지만 가을이 되니 참 마음이 편하다. 땅콩 수확을 시작으로 가을 걷이를 시작했다.
땅콩 농사가 잘 되었다. 잘 말리기만 하면 되는데 다람쥐들이 극성이라 땅콩을 펴 놓고 사람이 꼭 지켜봐야 한다. 땅콩 지키며 가을 하늘 바라보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횡성에서 부모님이 무농약으로 고추 농사를 지으시기 때문에 우린 대량으로 고추 농사를 짓지는 않는다. 청양고추가 생각보다 많이 나와서 태양초로 말리기 시작했다. 요즘은 일주일 중 엿새는 흐린 날이라 제대로 마를지 모르겠다.
가을이 되니 밤에 불놀이 하기 좋다. 토마토 스승인 민경 아빠와 한희네 식구들과 밤 늦도록 불을 피워 놓고 좋은 계절을 즐겼다.
가을에 빼놓을 수 없는 전어. 부안(그나마 장수에서 가장 가까운 바닷가다)의 민주노동당 벗들이 회에 굶주리다 못해 '환장한' 장수 당원들을 불쌍히 여겨(^^) 준 선물이다. 덕분에 산골짜기에 갇혀사는 장수 당원들이 오랜만에 자연산 전어 맛에 호강했다.
구절초가 가을을 알린다. 동네 곳곳에 향기로운 구절초 꽃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다.
포장해놓으면 앙증맞게 예쁜 쌈배추. 처음엔 포장 기술 배우는 데도 수업료를 톡톡히 지불했다.
청벌레는 천적으로 잡거나 손으로 잡을만한데, 요놈의 메뚜기는 팔딱 팔딱 뛰어 다녀서 손으로 잡기도 힘들다. 위 사진처럼 잎을 갉아 놓으니서 속이 탄다.
요즘 나오는 우리 상추다. 공판장에 낼 땐 다섯 줄로 이렇게 가지런히 포장하면 된다. 상추의 맛보다는 환상적인 포장 기술이 가격을 높인다. 이렇게 포장을 열심히 했건만 번번히 양이 모자라 공판장 출하는 완전히 중단하기로 했다.
오른쪽이 봄에 심은 애호박, 왼쪽이 최근에 심은 오이다. 4월에 심은 애호박이 아직도 나온다. 다들 이상한 일이라고 한다. 오이는 제철이 아니어서인지 좀처럼 자라지를 않아 애를 태운다.
올 가을에 '장수 사과'와 '부안 전어'로 교류했던 장수와 부안 두 지역의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한 군데 모였다. 부안에서 유기농 녹차를 재배하는 당원 네 밭 앞에서 찍은 단체사진.
왼쪽은 아랫집 선길 엄마가 갖다 준 호박죽, 오른쪽은 윗집 용민 엄마가 담아준 오이 김치다. 아내가 감기 걸린 걸 어떻게 알았는지 이웃들이 응원 차 갖다준 음식들이다. 최근에 TV에서 방영했다는 드라마 제목이 절로 떠오른다.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시골 살다보면 '완벽' 까지는 몰라도 마음 씀씀이 고마운 이웃들은 매일같이 만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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