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골 푸른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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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하루/2012년

태풍이 지나가다

백화골 2012. 7. 20. 23:41

 

7월16일(월) 간간히 소나기 - 콩잎 따다 하루가 가버림

 

 

날씨가 계속 흐리고 소나기가 내리던 하루. 역시 콩 순치고 잎 따서 포장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워낙에 콩잎이 가벼워서 무게가 나가지 않는다. 1년에 딱 한번 보내는 것이라 회원들 모두에게 조금 넉넉히 포장해서 보냈는데 하루종일 수확하고 포장하는 데도 일이 끝나지 않는다. 깻잎, 콩잎 등 잎을 따서 보내는 일은 역시나 정말 힘들다.

 

 

발송하는 날이면 5시에 택배 기사님이 우리집에 오시는데, 이 시간이 되어도 콩잎 포장은 끝나지 않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하고선 6시30분이 되어서야 발송작업이 끝났다. 여기저기서 빨리 오라고 전화가 오는데도 짜증 한 번 안 내고 편안하게 기다려주신 기사님이 참 고마웠다. 하루종일 콩잎을 땄더니 눈만 감으면 콩잎이 보인다

 

7월17일(화) 흐림, 소나기 - 마늘, 흰가루병


 

횡성으로 귀농해서 유기농으로 콩과 고추, 마늘 농사를 지으지는 부모님이 마늘을 수확해서 가지고 오셨다. 새로 지은 집에서 어떻게 농사 짓고 사는지 궁금하셨나 보다. 근처 송어 횟집에서 회를 떠놓았다가 맛있는 점심을 먹고난 뒤 우리 밭을 보여드렸다. 잘 꾸미고 산다고 흐뭇해하신다. 갓 수확한 마늘은 정말 향이 강했다. 부모님이 농사지으시는 곳은 해발고도 높은 장수보다도 훨씬 더 춥고 일교차가 큰 곳이라, 농산물들 향이 정말 강하다. 특히 올해는 마늘 씨알이 어느 해보다도 굵게 나왔다고 한다. 집안에 있는 채반들을 다 꺼내서 이곳저곳에 마늘을 펴 말려 놓았다. 며칠 말린 후에 회원분들에게 보내드릴 예정이다.

 

 

올해 오이와 애호박에 흰가루병이 유독 많이 번졌다. 아직 땅심이 부족해서인가보다. 1차 오이는 진딧물과 흰가루병 때문에 일찍 쳐 버렸고, 2차 오이도 순조롭게 피어올라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 병으로 완전히 죽어버린 잎은 떼어 버리고 흰가루병 잡는 유기농 자재를 구입해다가 열심히 뿌려줬다. 3, 4일에 한번씩 뿌려주고 날씨만 맑아지면 애호박과 오이가 살아날 수 있을 텐데. 결과가 어떻게 되든 20L 통을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뿌렸다.


7월18일(수) 흐림 - 태풍 전야, 힘겨운 발송 작업

 

 

태풍이 오후 1시 정도부터 장수에 영향을 끼친다는 일기예보. 태풍 오기 전 발송 작업을 마치기 위해 긴장하며 새벽에 일어났다. 환해지기 전부터 노지 작물 수확을 시작했다. 태풍 전 농촌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토마토 농사를 짓는 종필이가 하우스 보수 작업을 해야 한다며 부랴부랴 달려와서는 전동 드라이버를 빌려갔다. 하우스 구조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냥 방치해 두었다간 태풍 때 날아가게 생겼단다. 표정이 정말 급해보인다. 우리도 태풍 오기 전에 노지 작물을 수확해야 해서 정말 땀을 뻘뻘 흘리며 긴장해서 일했다.


 

태풍 걱정으로 가슴이 답답했지만 하우스 안에서 상추와 쌈채소 수확에 열중하다 보니 고요해진다. 상추와 쌈채소류는 더위에 약하기 때문에 여름 농사가 어렵다. 올 여름엔 상추 외에 보낼 쌈채소로 이 ‘인디언 시금치’ 하나만 심었는데, 맛은 그냥 밍밍한 편이지만, 동남아가 원산지인 아열대 작물이란다. 언젠가 얼핏 뉴스에서 보니 몸에 좋은 무슨 성분인가가 다른 쌈채소들보다 10배 이상 들어있다고 건강 채소로 요즘 인기를 끈다고 한다. 더위에 강하고 잎도 도톰해 수확하기 좋다.


역시 관건은 콩잎이었다. 태풍이 온다는데 콩잎 따는 일은 좀처럼 더디기만 하고... 다행이 점심 먹은 뒤에도 장수에는 태풍이 도착하지 않았다. 바람만 심하게 불고 큰 비는 내리지 않는다. 부랴부랴 발송 작업을 맞추고 정리하고 나니 5시가 조금 넘었다. 하루종일 어찌나 긴장하고 서두르며 일했는지, 행여야 실수나 안 했나 걱정스런 날. 저녁이 되니 드디어 비바람이 몰아친다.


7월19일 목 태풍, 비바람 - 태풍 피해 심각

 

 

밤새 태풍 카눈이 지나갔다. 찢어지는 듯한 바람 소리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연 재해에는 최대한 방비는 하되 마음을 편하게 가지는 것이 최고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밭 상황을 보니 마음이 편안하지만은 않다.

 

제일 위 사진처럼 잘 자라던 옥수수가 하룻밤 사이에 그 아래 사진처럼 완전히 꺾여서 쓰러져버렸다. 옥수수는 어느 정도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는데, 아무리 봐도 재기가 어려운 상황. 노지에서 잘 자라던 방울 토마토도 쓰러지고 순이 꺾이고 많이 죽었다. 이밖에도 밭 이곳저곳이 폭우에 파이고 작물이 쓰러지고 처참하다. 옥수수는 다음 주에 바로 수확을 앞두고 있었는데 반 정도도 수확을 못할 것 같다. 사과 농사 짓는 이웃들도 바람에 열매가 많이 떨어져서 피해본 농가들이 많다고 한다.


 

하우스 토마토도 밤새 많이 흔들렸는지 토마토가 많이 떨어졌다. 밭에 들어가보니 엎친데 덮친격으로 배꼽썩음병과 담배나방 유충 피해가 보였다.


토마토에 찾아오는 병은 보통 배꼽썩음병, 잿빛 곰팡이병, 청고병이 가장 심각하고 벌레는 담배나방 유충, 노린재 등이 피해를 준다. 사진처럼 배꼽이 썩어버리는 배꼽썩음병은 칼슘 부족으로 생기는 병이므로 유기농에서는 보통 계란껍질을 현미식초에 용해시켜 모종 때부터 1주일에 한번 정도 뿌려주면 방제가 된다. 잿빛 곰팡이병은 천적으로 잡고 청고병은 배수가 잘 되게 두둑을 높이고 땅심을 키워서 예방한다.


담배나방 유충과 노린재는 유기농 기피제로 미리미리 방제해야 한다. 아무튼, 날씨 탓에 방제를 소홀히 했구나 반성하고 얼른 계란껍질칼슘제와 담배나방 유충 잡는 유기농 자재, 잿빛 곰팡이병 막는 천적을 섞어서 토마토에 뿌려줬다.


 

방제 후에 물을 주었다. 토마토는 뿌리가 사람 키 만큼 내려간다고 한다. 그래서 뿌리가 썩지 않고 잘 퍼지도록 해주는 게 중요하다. 토마토가 처음 자랄 때는 퇴비를 주지 않다가, 어느 정도 열매를 달고나면 골과 골 사이에 유박 퇴비를 뿌리고 그 위에 물을 준다. 토마토 뿌리 바로 옆에 한번, 뿌리에서 조금 먼 골과 골 사이에 한번... 이런 식으로 물을 주면 뿌리가 모이지 않고 잘 퍼져서 여러 가지 병이 예방된다고 한다.


7월20일 금 맑음 - 태풍은 지나가고

 


 

올해 땅이 넓어지면서 제일 신경 써서 심은 작물이 브로콜리와 양배추다. 몸에도 좋고 사람들도 좋아한다. 그런데 이놈들이 유기농으로 키우기가 아주 어려운 작물이다. 화학 농약으로 벌레를 잡고 화학비료로 크기를 키우는 관행농과 달리 유기농 자재와 퇴비만으로 시중에서 판매되는 것들처럼 키우기는 참 힘들다. 봄에는 그나마 날씨가 서늘해서 비교적 잘 자랐다. 하지만 여름이 되니 작물들은 잘 자라지 못하고 해충들만 징그럽게 달려든다. 정말 어렵게 어렵게 키웠다. 오늘 양배추와 브로콜리 봄여름 작기 마지막 수확을 하는데 만감이 교차하면서도 내년에는 절대 여름에는 이 작물을 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철이 아닌데 너무 욕심을 부린 셈이다. 그래도 비록 크기는 작고 모양은 매끈하지 않았지만, 양배추와 브로콜리를 원없이 보내봐서 즐겁기도 했다.



 

아직 해뜨기 전의 캄캄한 새벽에 일하는 것이 저녁 무렵보다 낫다고 아내가 말했다. 새벽에는 조금 있으면 해가 뜰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서란다. 오늘 낮에 무지무지 더울 것이란 예보에 캄캄할 때부터 밭에 나가 잎채소 수확부터 시작했다. 금세 해가 뜨고 쾌청한 하늘이 펼쳐졌다. 이제 장마와 태풍이 지나가고 진짜 여름이 시작되려나보다. 여름 농사는 새벽에 일어나 점심 때까지 일하고 뜨거울 때 잠시 쉬었다가 해질녘까지 일한다. 보통 농민들이 약간 느슨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일일 철철 밀려 있어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이번 주 마지막 발송작업, 콩잎을 하루종일 수확, 포장하다 보니 또 하루가 지나간다. 오늘은 일찍 포장 작업을 끝내고 택배 아저씨가 오시길 기다렸다. 포장 완료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시고는 좋아하시며 얼른 농산물을 싣고 가신다. 택배차 가고 난 뒤 28점 무당벌레와 노린재에게 수난을 당하고 있던 가지밭으로 분무기를 메고 올라가 방제를 하고, 태풍에 조금씩 기울어져 있는 노지 고추밭에도 계란껍질 칼슘제와 유기농 기피제를 쳐주었다. 장마와 태풍으로 힘들었던 한 주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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