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만 해도 맑고 화창하고 평화로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비바람이 몰아칩니다. 비보다도 바람이 굉장히 거셉니다. 모종 하우스에서 토마토와 청경채 씨앗을 넣는데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와 하우스가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들썩들썩하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입니다.
몇 달에 한 번씩 있는 마을 노인회 모임이 있는 날입니다. 저희는 노인은 아니지만, 마을 주민이 대부분 노인회 회원이어서 그냥 마을 모임으로 생각하고 참석하라는 노인회 회장님의 명령(^^)에 따라 근사한 횟집 점심 자리에 함께 끼었습니다. 다른 마을은 새로 이사온 사람에게 노인회에 거액의 찬조금을 내라고 강요하여 갈등을 겪는 일도 있다는데, 저희 마을은 이것저것 사주시기까지 하니 황송합니다.
거창하게 차려진 회를 맛있게 먹어야 하건만, 마음은 하우스와 그저께 심은 밭 작물에 가 있습니다. 바람 소리가 점점 더 거세집니다. 모임이 끝난 후 집에 와 보니 약간의 피해가 있습니다. 고라니 들어오지 말라고 노지에 쳐 놓은 고라니 망이 다 쓰러져 있고, 애호박과 오이를 넣으려고 준비해놓은 하우스 뒤쪽 문짝이 부서져 날아가 버렸습니다. 심란한 마음에 사람들 안부도 물을 겸 여기저기 전화해보니 계북면 이곳저곳에서 벌써 하우스 몇 동이 날아갔다네요. 말만 들어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참, 오늘 노인회 모임에 갔다가 최고령 어르신에게서 재미있는 말을 들었습니다. 누군가 올해는 유난히 봄에 비가 많이 온다고 말을 꺼내자, 올해 같이 봄비가 많은 해는 여름에 가문 법이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용이 너무 많이 왔기 때문이래요. 비를 몰고 오는 용이 봄에 너무 많이 모여들어 ‘다른 용들이 많으니 내가 없어도 되겠구나’ 하고 다 가버리는 통에 여름엔 오히려 가물게 된다는군요. 오랜 세월 동안 쌓여온 기후 관찰과 경험에서 통계적으로 나온 이야기겠지요. 거기에 용 이야기가 얽힌 것이고요. 아무튼 올 여름이 오기 전에 노지 밭에도 관수 시설을 연결해 놔야겠습니다.
저녁이 되면서 바람이 조금 잦아들긴 했지만 여전히 여기저기서 들썩들썩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네요. 오늘밤이 무사히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